북한산 자락 아래 샛길마다 빽빽이 들어선 낡은 한옥과 고가(古家)들. 막걸리 등 민속주와 전통적인 한식이 더욱 어울릴 것 같은 곳. 권부(權府)인 청와대를에워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발이 제한되고, 사복경찰의 눈매가 부담스러워 왠지 가까이 하기에 망설여지던 곳. 그래서 수제비 등 몇몇 별미가 생각날 때만 찾게되던 거리.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옛 이미지다.이 삼청동이 지금 소리없는 대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일찌감치 소문났던 수제비와 일본식 우동을 맛보거나 삼청터널을 지나가기 위해 잠깐씩 거치던 거리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을 거치면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 삼청동은 청와대와 경복궁을 상품화하면서 강남의 청담동에 버금가는 강북 음식문화의 메카를 꿈꾼다.
스파게티집과 와인바가 넘쳐나고 예쁜 케이크 집과 카페와 찻집들…. 한적하고 나른해 보이는 동네지만 가게가 들어설만한 도로변 자리는 이미 만원이다. 식사 시간마다 유명식당 입구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밀려드는 차량에 도로는 벌써부터 좁아만 보인다. 예전 모습과 크게 달라진 삼청동은 또 다른 탈바꿈을 준비중이다.
한옥과 양식의 조화
삼청동에는 한옥을 예쁘게 개조한 집들이 여럿 있다. 와인바 겸 이탈리아식 레스토랑 로마네꽁띠나 뺑& 빵, 배동가지 등.
지붕은 기와, 벽은 갤러리 윈도. 도로변에서 보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뺑& 빵은 이 곳에서 한옥을 개조한 대표 사례다. 2년여 동안 주인없이 방치되던 한옥을 사들여 벽을 허물고 여닫을 수 있는 큼지막한 갤러리 창을 설치했다. 지배인 방찬우씨는 "골격은 물론 천장이나 지붕, 서까래까지 원래 있던 고풍스런 것들은 그대로 살리면서 필요한 부분만 바꿨다"고 소개한다. 밤에 밖에서 볼 때 비쳐지는 조명 불빛이 특히 눈에 띈다.
삼청동사무소 맞은 편 골목 모퉁이에 높다랗게 자리잡은 로마네꽁띠는 원래 골목 쪽이 벽으로 닫혀 있던 폐쇄적인 한옥이었다. 와인 및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새단장하면서 기존 벽면을 허물고 전면을 유리로 바꿨다. 실내에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개폐가 가능한 천장을 둔 것도 특색. 실내는 벽돌을 이용해 기존 한옥의 구조체를 살렸으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스파게티와 포도주로 만드는 프랑스식 닭요리 '꼬꼬뱅', 떡갈비 등 와인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사용해서 만드는 음식을 주로 내놓는다. 또 최근 문을 연 배동가지 역시 한옥을 멋있게 개조한 사례다.
"인사동이너무 현대화 됐다면 삼청동은 아직 한국적인 정취가 남아 있는 곳 아닐까요!" 로마네꽁띠의 주인 이인씨는 "한옥을 멋스럽게 개조한 집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삼청동엔 와인이 잘 어울린다.
와인바가 부쩍 늘었다. 언뜻 동동주나 막걸리가 어울릴 것 같지만 실은 사람들이 와인을 더 찾는다.
2년여전 만 해도 와인바라고 할수 있었던 곳은 더레스토랑과 캬브 정도. 이후 빠숑이 와인 전문바로 문을 열었고, 더레스토랑과 콩 전문레스토랑인 콩두도 와인바를 확장하거나 새로 오픈했다. 지난 해 가을에는 oioi, 올해에는 로마네꽁띠가 동참했다. 스파게티 전문점인 수와래나 난짱 등 음식에 와인을 취급하는 곳들까지 치면 이미 삼청동의 주종은 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인을좋아하는 손님들 취향이 복잡한 시내 보다는 한적한 분위기의 외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아직 예전 삼청동이 갖고 있던 운치가 남아있는데다 시내권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매력이죠." 빠숑 주인 심준현씨는 "사람들이일상사를 떠나 삼청동을 찾고 와인을 마시는 것은 '특별한 공간으로의 탈출'"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로마네꽁띠의 이인씨도 "우리 문화가 살아 있는 전통 공간과 맛 좋은 와인의 조합은 걸작"이라고덧붙인다.
삼청동은 성장중
도로변은 좁다. 이미 도로변에 들어설만한 것은 다 들어섰다. 그래서 골목 안켠을 비집고 들어간다.로마네꽁띠는 도로변 작은 골목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다. 오르는 길이 다소 불편하거나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위치, 도로에서 조금 올라와야만 하는 이 곳은 대신 '시원한 전망'을 소득으로 얻었다. 낮에는 인왕산 사계절이 밤에는 도심 야경이 운치있는 식사의 배경이 되어준다. 그래도 아직까지 삼청동 골목은 한산한 편, 주택가가 대부분이다. 로마네꽁띠는 이 동네에서 골목 안쪽에 있는 집으로는 거의 선구자격이다.
한옥개조 전문사인 나오디자인의 김형석 실장은 "삼청동에 작업실이나 영업공간을 구하러 찾아 오는 방문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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