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체류 중인 일부 반체제 인사들에게 적용되던 준법서약서는 그대로 유지된다구요? 황당합니다. 준법서약서 제도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10일 독일 베를린의 자택에서 강의를 위해 막 집을 나서려던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59·사진) 교수는 기자의 전화를 받고 어이없어 했다. 이틀 전 법무부가 준법서약서 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마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한국 방문을 고대하던 그에게 이 '기쁜' 소식은 즉각 전해졌다. "방한할 경우 각종 학술대회 참가 등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웠다"는 송 교수는 그러나 자신은 국정원에 의해 여전히 준법서약을 해야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신분으로 분류돼 있다는 기자의 전언에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준법서약서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 기대를 했어요. 준법서약이 반민주적 관행이라는 점을 정부도 인정한 셈이잖아요. 하지만 결국 법의 보편주의를 무시하고 입맛에 따라 제한을 가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조치로 끝나나 보네요."
송 교수는 공안당국에 의해 '친북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모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196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고,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한 그는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해외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면서 공안기관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혔다.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 송 교수가 91년 평양을 방문한 뒤에는 북한의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결국 96년 부친 사망 때에도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몇 차례 귀국 기회가 있었지만 양심에 위배되는 준법서약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방한을 포기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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