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과 KBS의 대결이 극에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공영방송인 KBS가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한나라당이 KBS 2TV의 민영화와 수신료 폐지 등을 포함한 '방송개혁안'을 발표한 데 이어 국회에서 KBS의 결산 승인안을 부결시키고 예산안을 사전심의하겠다고 나선 것은 거대야당의 정치적 횡포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의 안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거나 국민적 동의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것인데다 KBS 정연주 사장 체제에 대한 적대적인 당내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대통령과 코드가 일치하는 정연주 사장이 선임된 것, 정파성이 강한 문성근씨를 현대사 프로그램의 고정 진행자로 선정한 것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특정한 정치 노선으로 국민교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신설 프로그램을 문제 삼았다. 지난 번 대통령선거에서 방송사들이 불공정 방송을 일삼았다는 주장의 연속선상에 있는 지적들이다.
이 같은 태도는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으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심증과 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한나라당의 이 같은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며 이른바 KBS 흔들기에 동참하며 사태가 복잡해졌다.
조·중·동 세 신문은 신설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가 MBC의 '미디어비평'처럼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신문 칼럼에 등장하는 학자들은 '공영방송이 스스로 도마에 오르길 자청한 것은 아닌가'라는 역설적인 주장도 편다. 이들은 거대 야당의 권력 남용에는 눈을 감은 채 문제의 원인을 방송사탓으로만 돌리며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 '탈정치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사실 방송의 공정성을 따지자면, 이번 KBS 사장 선임과정과 절차는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KBS 사장 선임 당시의 룰은 이후 여러 방송기관 임원들을 선임하는 데 그대로 준용됐다.
방송의 독립성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한나라당의 수신료 폐지와 예산안 사전심의 주장의 위험성이 훨씬 크다. 이 같은 주장은 방송의 기본운영계획, 예산 결산의 심의, 사장의 임명 제청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KBS 이사회의 독립성에 절대적인 위협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KBS 이사회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KBS가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개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것은 과거 정치 예속화에서 탈피하여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자기 선언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조·중·동이 한나라당의 방송장악 의도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고, 공영방송의 자기 반성을 '정치편향', '정치과잉'으로 깎아 내리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친일과 독재정권에 빌붙은 과거를 여전히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신문들이 아닌가.
세 신문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라고 날을 세운다. 문제가 없는데 특정신문을 건드린다면 분명 악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디어비평의 내용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식상할 정도로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한나라당과 KBS의 갈등에 대한 조·중·동의 편협한 보도를 보면 방송 장악을 염두에 둔 거대야당의 정치적 의도에 편승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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