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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소록도를 다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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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소록도를 다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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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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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에 가면 메이지무라라고 하는 역사건축 테마파크가 있다. 이 곳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 개항장 고베에 있던 외인 주택이나 새 수도 도쿄를 나타내던 제국호텔, 전형적인 판옵티콘 형태의 목조 감옥과 전차 등 개발로 인해 사라질 수밖에 없던 건축물들을 옮겨 한 자리에 모은 장소이다. 여기에 서면,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근대 일본'을 한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조성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겠지만, 그런 비용을 무릅쓰고 이런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었던 상상력이 놀랍다. 일본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더욱 값진 장소가 될 것임을 간파했음에 틀림없다.나는 이 메이지무라를 보면서 10년 전 우리가 허물어버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생각했다. 광복한 지 반세기가 다되도록 그 자리에 그 건물을 그대로 두었던 것도 민족적 수치였지만, 통째로 없애버린 것도 문제였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역사적 경험이 아니라 문화적 상상력이었다. 우리에게는 이와 비슷한 근대건축 테마파크가 아직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의 후보지는 있다. 건축물들을 이곳 저곳에서 옮겨올 필요도 없이 일제 시대를 집약하여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 바로 소록도이다.

소록도는 강제노동과 구타, 기아와 단종수술로 상징되는 일제의 나환자 정책이 그대로 증언되고 있는 현장이다. 1917년에 지어진 자혜의원 건물과 문화통치의 위력을 보여주는 일본인 원장 기념비, 30년대 지어진 형무소, 시체해부실, 중앙병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센병 구료를 천황제와 연결시킨 '황태후 송덕비'도 남아 있다. 이 곳은 아직 병력자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한 때 6,000여명을 수용했던 시설에서 지금은 7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72세다. 길게 잡아 소록도 개원 100주년이 되는 2016년에 이르면, 이 곳은 지금의 국립 병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소록도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사라져야 할 것은 그대로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할 것은 사라지는 잘못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라져야 할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부첨인'제도이다.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이 제도는 경증의 환자가 중증의 환자를 돌보도록 하고 약간의 수당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경제적 도움을 준다는 명분 하에 정상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환자들의 노동을 착취했던 식민지적 잔재다.

각종 복지시설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유의해야 할 것이 과거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주는 시설들의 보존이다. 2년 전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 1만여명의 환자들이 한많은 삶을 마감했던 화장장이 헐리고 붉은 벽돌의 잔해들만 나뒹구는 것을 보았는데, 과거에 중앙병사로 쓰였던 건물의 복도가 이번 장마가 끝나면 헐릴 운명에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 복도는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회랑인데, 병원 당국자는 이 것이 낡고, 새로 지은 건물과 높이가 맞지 않아서 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록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역사적 현장의 파괴라고 대답할만하다. 이런 현상의 직접적 원인은 한정된 예산이지만, 그 근저에는 책임있는 당국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역사적 안목의 짧음이 작용하고 있다.

소록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한센병 역사 박물관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소록도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 병원이지만, 미래의 역사교육과 문화관광의 차원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의 혹독했던 식민지 정책과 환자들의 쓰라린 고통을 증언해주는 시설과 현장을 보존할 수 있는 계획과 예산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위해 차분히 준비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정 근 식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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