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기억하기 쉬울 것'은 좋은 영화 제목의 명제. 이 명제가 흔들리고 있다.곧 개봉할 '툼레이더 2―판도라의 상자'는 제목이 상당히 길지만 원제는 더 하다 'Lara Croft: Tomb Raider―The Cradle of Life'(라라 크로프트:툼레이더―인생의 요람). 주연 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그걸 누가 다 기억하겠어요. 그냥 '툼 레이더 2'라고 하겠지"라고 말했을 정도다.
부제를 붙이는 것은 요즘 미국 영화의 뚜렷한 흐름이다. '터미네이터 3'의 원제는 '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터미네이터 3: 기계들의 봉기'. 이런 긴 제목이 부담스러워지자 영화사는 아예 'T3'라는 간략한 단어로 부르기로 했다. 주연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부제만 봐도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일단 기계와 사람이 대치 국면이다. 그런데 기계들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좋지 않은가"라며 긴 제목을 옹호했다.
애니메이션이나 가벼운 트렌드 영화에도 부제 달기가 유행이다. '신밧드: 7 대양의 전설'은 'Sinbad: Legend of the Seven Seas', 리즈 위더스푼의 변호사 도전기인 '금발이 너무해' 2편의 원제는 'Legally Blonde 2: Red, White & Blonde'이다. '미녀 삼총사' 2편은 'Charlie's Angels: Full Throttle'로 국내에서는 '미녀 삼총사2―맥시멈 스피드'라는 비교적 쉬운 영어로 바꾸었다. '덤 앤 더머' 2편의 제목은 'Dumb and Dumber: When Harry Met Lloyd'인데 이 부제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패러디.
'반지의 제왕'이 '반지 원정대' '두 개의 탑' 등 부제를 붙인 것은 원작자인 J.R.R. 톨킨의 책 제목을 그대로 수용한 것. 또 '스타 트렉' 같은 긴 시리즈물도 부제를 붙이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러나 최근의 부제 열풍은 이런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부제는 전편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뭔가 긴 제목이 '그럴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관객들이 예전보다는 긴 영화 제목을 기꺼이 기억할 만큼 지적인 수준이 높은데다, 할리우드의 현학 취미도 가세하고 있다는 평.
우연인지 한국에서도 부제를 붙인 긴 제목의 영화가 나타나고 있다. 학원 호러물로 많은 열혈팬을 지닌 '여고괴담'은 3편 제목이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애 드라마는 '스캔들―조선남녀 상열지사' 등이 그것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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