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EBS 사장후보선정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 2명에 대해 병역 미필을 이유로 동의를 거부하고 재공모를 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위는 9일 "EBS 사장후보선정위에서 심사를 거쳐 후보자 8명 중 2명을 추천했으나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두 사람 다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서 15일까지 후보 공모를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방송위는 "최종 추천된 2명은 신상 관련 위법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교육전문 공영방송인 EBS의 특수성을 감안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방송위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들어 구체적 거부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두 후보 모두 병역 면제가 문제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A씨는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 체중 미달로 병역이 면제됐고, 방송인 출신 교수 B씨도 중이염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한 방송위원은 "병적 확인서와 본인의 진술 상으로는 법적인 하자가 없었다"면서 "본인들로서는 억울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유가 무엇이든 병역 미필자가 공직을 맡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이를 문제 삼는 글이 인터넷에 오르고 위원들에게도 민원이 쇄도했다"면서 "사유가 어찌 됐든 비난이 쏟아질 것이 뻔한데 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방송위는 이날부터 15일까지 1주일간 후보자 공모 접수를 받아 후보선정위의 심사와 전체회의 동의 등 절차를 다시 밟기로 했다.
또 이미 심사를 거친 8명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후보선정위 7명 가운데 EBS 사원 대표 등 방송위 외부 인사 3명도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방송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광범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방송위가 두 후보의 병역 면제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밝힌 점에 주목, "합법적 군 면제자라도 국민 정서 때문에 공직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인권 침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역 미필이 중대한 결격사유라면 미리 후보 선정 기준으로 제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방송위가 스스로 구성한 후보선정위의 심사 결과를 뒤늦게 억지 논리를 내세워 뒤집은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 꼬집었다.
EBS 경영 공백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한 상태다. EBS 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사장 선임이 지연되는 동안 내년 예산에서 국고보조 30억원, 방송발전기금 지원액 24억원이 삭감되고 편성 개편과 인사, 외주제작사 선정 등이 늦어지는 등 조직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 모든 책임은 방송위가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방송위의 이번 결정으로 정연주 KBS 사장과 두 아들의 병역 문제 논란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대학 시절 허리 디스크로 병역을 면제 받았고, 두 아들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 의무를 벗었다.
방송계의 한 인사는 "같은 공영 방송인데 KBS 사장은 (군 면제자가 돼도) 괜찮고 EBS 사장은 안 된다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면서 "위법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병역 면제자가 돌을 맞는 '마녀사냥'이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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