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예정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 신청 마감이 다가오면서 핵폐기장 건설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핵 폐기장의 해외 사례'를 둘러싸고 사업추진측과 환경단체들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고, 각종 지원으로 지역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며 주민설득에 나서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해외 핵폐기장에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아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모범적인 폐기장으로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된 일본 아오모리(靑森)현의 로카쇼촌은 이 같은 논쟁의 한가운데 서있다.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현지 취재를 통해 그 논란의 실상을 살펴봤다.평온한 일상의 마을
일본 수도 도쿄(東京)에서 북쪽으로 700㎞, 혼슈(本州)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의 로카쇼촌. 인구 1만1,000여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우라늄 농축공장,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임시저장소, 재처리공장 등이 밀집된 일본 핵연료 산업의 핵심 기지다.
로카쇼촌은 외견상 다른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함이 흘렀다. 폐기장 인근에는 동양 최대의 화훼단지가 조성돼 있었고, 기피 시설 주변에 항상 있게 마련인 시설 반대 플래카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겐지 후루카와 로카쇼 촌장은 "지금까지 주민들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일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중의 하나였던 마을이 크게 도약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투입된 190억엔의 지역교부금 등으로 30여년전 일본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던 로카쇼촌의 1인당 소득도 지금은 일본 전체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여전히 진행중인 불신과 논란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 원전 관련 시설에서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로카쇼촌에서도 이상징후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1999년 이바라키(茨木)현의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돼 집단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진 데 이어 지난해 8월 일본 최대의 전력회사인 도쿄덴료크(東京電力)가 80년대 이후 17년동안 29건에 이르는 원전 사고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여파로 도쿄덴료크가 운영하는 원전 17기중 12기가 현재 가동 중단 상태이며 목스(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섞은 연료)를 사용하는 차세대 원전 사업인 '플루서멀' 계획도 중단됐다.
로카쇼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2005년 완공예정인 재처리공장에서 지난해 물이 새는 사고가 발생, 시험조업이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로카쇼촌의 핵연료 시설 운영중단을 위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핵연료사이클저지 1만인소송 원고단'의 야마타 기요히코(山田淸彦·46) 사무국장은 "그동안 현실적인 피해가 없자 주민들의 반발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최근 잇딴 사고로 불안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아오모리현 지역일간지의 여론조사에서 현 주민의 87.5%가 핵폐기장 등 핵연료 시설에 대해 불안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의 핵연료시설을 운영하는 니혼겐넨(日本原然)(주)의 이토 마코토 부장은 "50∼60년쯤 지나면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수명이 다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환경단체들은 외국에서 중준위로 분류되는 폐기물도 일본에서는 저준위에 포함돼 매립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일본 환경단체들은 폐기장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 오염까지 우려했다.
원전 관련 시설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도 논란거리였다. 일본 환경단체들은 "94년 지진으로 일부 시설에 피해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니혼겐넨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니혼겐넨은 수질 대기 농작물 등에 대한 방사성 측정자료를 3개월마다 공개하는 등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주민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감독위원회 등이 없어 이런 불신을 불식시키기에는 미흡했다.
안개 속의 일본 핵산업의 향방
핵폐기장 논란의 근원에는 핵 산업의 지속 여부에 대한 인식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은 2011년까지 13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을 세우는 등 우리나라와 함께 원전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나라. 하지만, 도쿄덴료크 사태 이후 국민들의 불신이 고조되면서 핵 산업이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는 상태. 야마타 사무국장은 "원전을 중단하고 대체에너지로 전력산업을 전환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에 90만명이 참여했다"며 "올해가 일본 전력산업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카쇼(일본 아오모리)=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핵발전 논란 3가지
일본이든 한국이든 핵발전을 둘러싼 논점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찬성측은 원전의 뛰어난 경제성을 든다.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이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현재 처분 방법이 없는 고준위 폐기물의 위험성 등을 감안하면 결코 경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핵발전의 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의 자원량이 50∼60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핵발전의 유한성도 논란거리. 찬성측은 우라늄을 재처리해 얻는 플루토늄을 발전하면 무한대로 사용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플루토늄 발전시 엄청난 방사능 물질이 발생, 인류를 더 큰 위험 속으로 빠뜨릴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또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핵발전을 포기하고 있는 데 대해 찬성측은 유럽은 이미 전력 수요가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핵발전의 위험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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