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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 / 양덕준 레인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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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 / 양덕준 레인콤 사장

입력
2003.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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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3개월 걸려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흘린 땀과 노력은 3년치와 맞먹죠."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외형과 스케이트 보드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디자인. 요즘 청소년과 젊은이들 사이에 '목걸이 MP3'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이리버'의 생김새다. 이 제품을 만든 레인콤의 양덕준(52) 사장은 "아이리버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3개월간 직원 전체가 '꼭 해내겠다'는 결심으로 하루를 한 달처럼 쪼개 쓴 노력이 아이리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양 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 사장에 그 직원"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열정과 추진력에 있어서 양 사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이리버 브랜드 개발 초창기, MP3 CD플레이어의 디자인을 부탁하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사장을 뉴욕까지 직접 찾아간 일은 유명한 일화다. 양 사장은 "자체적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세계인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세계적인 관점을 지닌 디자인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가 눈앞의 목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발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추진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임원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기업을 설립한 것도 이런 열정과 무관하지 않다. 1998년, 햇수로 12년간 몸담은 직장을 그만두고 레인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일은 CD플레이어 등 디지털 미디어기기 기술을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해외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마케팅을 했던 그의 경험과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들의 기술이 어울린 사업이었다. 비교적 쉽게 기술력을 인정 받았고, 국내외 여러 업체에 솔루션과 원천 기술을 판매했다.

"기술사용료(로열티)만으로 만족했다면 오늘의 아이리버는 없었을 겁니다."

기술만 팔다 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대로 된 디지털 기기를 만들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 걸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솔루션을 사가는 업체 중에는 이런 능력이 부족해 제품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결국 하나에서 열까지 제품의 모든 부분을 돌봐줘야 했다. "품에 비해 수익이 너무 적었죠. 로열티 몇 푼에 이 고생을 하느니 아예 우리가 다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기술 제공업체에서 생산업체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생산라인이 필요하다. 당연히 수백억원의 자금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그는 해외 마케팅 전문가 출신답게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해답을 내놨다. 홍콩의 제휴선 'AV컨셉홀딩스'를 통해 중국 본토에서 제품을 생산하기로 한 것. 큰 위험 부담 없이 제품 생산에 나설 수 있는 묘안이었다. "그때 공장을 세우겠다고 자금을 끌어 모으고 빚을 졌다면 아이리버의 신화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주변의 말이다.

레인콤은 MP3 플레이어 자체생산 2년 만에 국내 시장의 55%, 세계 시장의 30% 가량을 점유하며 세계 최고의 MP3플레이어 제조사가 됐다. 2000년 80억원이었던 매출은 2002년 800억원으로 꼭 10배 늘었다.

양 사장은 가끔 사옥 1층의 고객상담센터를 찾아가 서비스를 받으러 온 고객과 차나 점심을 같이 하며 직접 의견을 듣기도 한다. 그는 아이리버의 성공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세련된 디자인, 세계화한 경영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마음입니다. 정성 들여 만든 제품이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사후지원을 하는 것이 아이리버의 유일무이한 전략입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 양덕준 사장은 누구

▲ 1951년 대구 출생

▲ 1977년 영남대학교 응용화학과 졸업

▲ 1978년 삼성반도체 입사

▲ 1988년 삼성전자 홍콩지점장

▲ 1991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수출담당 이사

▲ 1999년 (주)레인콤 설립

▲ 2001년 2,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 레인콤은 어떤회사

레인콤은 1999년 CD플레이어 등 광저장(Optical Storage) 장치와 관련된 반도체 기술 개발업체로 출발했다. 2000년 PC용 멀티미디어 압축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멀티 코덱 CD플레이어'를 개발하면서부터 디지털 멀티미디어 전문 업체로 거듭 났다. 현재 MP3 CD플레이어, 메모리 MP3 플레이어, 하드드라이브 MP3 플레이어등 휴대용 MP3제품군이 주요 생산품목이다.

지난해 국내외에 70만대의 MP3관련 제품을 판매해 총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품목에 따라 15∼30%대로, 국내시장만 따지면 55%를 넘는다. MP3 CD플레이어의 경우 소니·필립스·파나소닉 등 유명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판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 회사는 벤처기업으로는 드물게 일찌감치 글로벌 경영에 나선 것이 특징이다. 제품 생산기지는 중국에 두고, 국내에서는 마케팅 및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본금은 26억원이며, 올해 내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예비 심사를 받고 있다.

내가 본 양덕준 사장

나는 양덕준 사장을 뉴욕의 이노 디자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제품 디자인 의뢰차 왔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건으로 사장이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오랜 세월 이국에 머물면서 고국의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터였다. 여러모로 내게는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

양 사장은 디자인에 관해 쓴 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미국까지 한 달음에 달려왔노라고 했다. 그리고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레인콤이라는 회사의 가능성과 제품에 대해 설명했다. 낯선 사람을 만났지만 일말의 숨김이 없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태도였다.

그의 확고한 경영신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 해외영업 경력에서 묻어난 국제적 경영감각, 강한 추진력과 열정은 내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올해로 3년째 이어온 이노 디자인과 레인콤의 파트너십은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사업 파트너로서 지켜본 양 사장은 뛰어난 전술가라 표현할 수 있다. 그의 경영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한번 마음 먹은 것은 눈깜짝할 새에 해내고 만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빨리 달려야 하는 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전술가'인 것이다.

레인콤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직원들에 대한 양 사장의 인상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다. 언제나 여유로운 미소가 넘치고, 자유롭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선다. 한편으로 날카로운 판단력과 열정이 모두를 자극해 직원들이 절로 신바람이 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논리'라고 믿는 내게 그의 열정과 자유로운 사고는 또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김 영 세 이노디자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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