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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康장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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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康장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입력
2003.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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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7월8일자) 오피니언 면에서 본지의 윤승용 사회1부장은 '강금실 장관의 러브레터'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강 법무장관이 검사들과 접하면서 검찰의 조직 논리에 동화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했다.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윤 부장의 칼럼에 몇 마디 더 부언하고 싶다. 강 장관에게 고깝게 들릴 말을 같은 지면에서 이어달리기하듯 늘어놓게 된 것이 유감스럽다. 그러나 이 고까운 말들은 그가 퇴임할 때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내 다 합쳐놓은 것보다 낫다'고 평가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기자의 충언이기도 하다.강 장관이 지난 2월 말 취임 일성으로 표나게 강조한 것은 법무부가 국민의 인권 보호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직 당국의 우두머리 입에서 나온 인권 발언은 길 가다가 제복 경관만 스쳐도 지은 죄 없이 가슴 뜨끔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맑은 샘물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기자는 강 장관에게 자신의 취임사를 실천할 뜻이 과연 있는지 점점 더 모르겠다. 지난 5월18일 한총련 학생들의 광주 시위 이후 그는 한총련 수배 해제와 합법화에 대해서 입을 닫았고, 그 전후로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해서도 관심을 접은 듯하다. 그 즈음 강 장관이 청송보호감호소를 방문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인권 단체들은 그가 악명 높은 사회보호법을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 법을 그대로 놓아둔 채 재소자들의 '복지'를 위해 보호감호소를 더 짓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인권 악법인 보안관찰법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물론 법 개폐는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원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반인권법의 유지를 바라는 한, 이 법률들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법무부가 인권의 주무 부처로서 이 법률들의 개폐 의지를 또렷이 드러내고 이와 관련된 토론을 조직하며 여론을 선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법무부가 그런 태도를 명확히 할 때, 인권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나 양식 있는 정치인들의 도움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금 손을 거의 놓고 어찌 될 지 모르는 내년 총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취임한지 고작 넉 달이 조금 지난 장관을 이렇게 다그치는 것이 야박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강 장관에게 국민의 힘이 가장 실려있을 때다. 지금 개혁을 밀고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욱 못한다. 그리고 강 장관이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는 임면권자인 대통령도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국내 분야를 관장하는 국무위원들에게는, 국제적 힘의 질서에 떠밀려 보수적 외교노선으로 기운 대통령의 탈개혁 행보를 보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검찰 내부의 다수 의견은 이 법들의 존치에 더 호의적일 터이다. 검찰을 변화시키러 그 자리에 간 강 장관이 오히려 검찰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는 것은 그래서이기도 하다. 세간에 떠도는 농담 가운데, 노무현 정부가 다수파 정권이 되는 가장 쉽고 확실한 길은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가입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농담인 것은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사실 못지않게, 한나라당에 가입하는 순간 노무현은 노무현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한나라당에 검찰을 견주는 것은 양쪽 다에게 결례이겠지만, 단지 검찰 위에 얹혀서 검찰의 보수적 부분에 완전히 동화된 강금실은 이미 강금실이 아니다. 자신이 화려한 사교계에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엄혹하기 짝이 없는 개혁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개혁은 이미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 속에 있다는 것을 강 장관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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