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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여름날 풍류에 더위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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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여름날 풍류에 더위 "싹"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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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한가롭게 노닐다'라는 뜻의 제목인 '석천한유' (石泉閒遊)라는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 있다."시냇가에 별장을 지어, 만권(萬卷) 시서(詩書)를 쌓아두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 곁에 두고, 거문고 줄 얹어 세워 놓고, 보라매 길들여 두었다가 등산할 때 데리고 가고, 창 쓰고 말 타기 배워두고, 별장 주변에 정원 가꾸어 아침저녁으로 꽃과 달을 즐기고, 이따금 술자리를 마련해 벗도 사귀고, 가끔씩 물가로 나가 고기도 낚고…." 이 정도라면 남아(男兒)로서 할 일이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계절 가는 줄 모르고 잘 지내겠노라는 작자 미상의 시조다.

과연 조선시대의 남자들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지냈단 말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기에 노래로나마 꿈꾸어 본 것일까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중에 이 그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꼼꼼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림 속 사나이의 한 여름이 부러워진다. 많은 것을 가지고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 저 그림 속의 시간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저기 잘 지은 이층 누각에 앉으면 무슨 소리가 들릴까. 앞쪽으로 흐르는 물소리, 해묵은 버드나무와 오동나무 잎새가 바람결에 일렁이는 소리, 잘 생긴 점박이 백마를 손질하는 소리, 마당에서 부산스럽게 노니는 개 소리, 그리고 작은 소반에 수박화채를 들고 누각 계단을 오르는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 그리고 손등에 앉힌 매가 이따금 푸드덕거리는 소리…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여인의 맑고 시원한 가야금 소리. 이렇게 호사스러운 한가로움이 허락된다면 아무리 찌는 삼복더위인들 마다 할리 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저 오동나무 바람을 쏘이며, 무릎 맞대고 앉아 연주하는 저 여인의 가야금 소리도 듣고 싶고, 먹음직스러운 수박화채 맛도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당 징 당 동 다루동 다앙징…' 이런 가야금 소리를 누각 위에 앉아 바로 무릎 맞댄 거리에서 감상할 기회가 요즘은 더욱 드물어진 터라 그림 속 주인공의 한가로운 시간이 더욱 부럽게 느껴진다.

이 그림 속의 남자는 석천(石泉) 전일상(全日祥, 1700∼1753)이라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전일상은 무관(武官)이었으며 경상좌병사 등의 요직을 지낸 분인데 이 그림 속의 누각에 놓인 서적과 문방구, 잘 길들인 매와 점박이 말, 가인(佳人)을 고루 갖추고 문무와 풍류를 적절히 즐기는 일상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 호방한 성품의 풍류남아였을 것이다. 여름을 보내며 이 사람의 한가로운 시간을 그림으로 공유해 보는 중이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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