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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이인호 익산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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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이인호 익산문화원장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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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전 논산 연무대의 어느 겨울밤. 방한모를 쓰고 총을 맨 채 보초를 서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보초는 금연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 때였다. 새벽 2시가 되었는데 순찰 주번 하사가 다가왔다."담배 있으면 한 개피만 내." "안 피우는데요." "괜히 그러지 말고, 있으면 꺼내." 명령이었기에 담배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너도 한 개피 피워." "못 피웁니다." "괜찮아. 추울 때는 담배라도 피워야 견딜 수 있다." 그는 끝내 내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다. 기침만 나왔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그것이 내 담배인생의 시작일 줄을. 그 뒤 가끔 한대씩 피웠는데 어느 순간 맛이 구수해지기 시작했다. 고달픈 군대 생활에서 담배는 좋은 친구였다.

스물 다섯에 제대하고 상경, 박초월 선생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던 어느날 학원 화장실에서 맛있게 담배를 피우다 들키고 말았다. 선생님은 "소리꾼은 담배 피우면 안돼요"라고 나무랐고 나는 금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 지키기는 어려웠고 흡연량만 늘었다. 그림을 그릴 때 손가락 사이에 담배 한대를 끼우고도 또 한대에 불을 붙여 한꺼번에 두 대를 피울 정도였다.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줄곧 무지막지하게 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던 1993년 어느날, 결혼식 참석차 제주도에 갔다가 심장판막으로 12시간이나 숨이 멈춘 일이 일어났다. 주위에서는 내가 죽었다고 했고 가족들도 제주로 건너와 장례준비를 했다. 나는 전기충격 요법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고향에 있는 원광대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담배를 끊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침대 밑에 감춰놓고 하루 2∼3갑을 피웠다. 마침내 나는 심장판막증, 고혈압, 당뇨, 천식, 버거스 등이 겹쳐 장애 2급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 내가 금연을 결심한 것은 지난해 연말이었다. 12월20일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양약이 듣지 않아 한약을 먹었는데도 기침이 나오고 열이 올랐다. 다시 한의원에 찾아가 강하게 지어달라고 했다. 한의사는 "약이 잘 듣는데…" 라며 말을 흐리더니 약 먹는 동안이라도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다. "예"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버릇처럼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자지러지게 기침이 나왔다. 그 순간, 이번 만은 담배를 끊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흰 종이를 가져와 담배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담배야. 너와 나의 만남이 어언 47년. 외로울 때나 괴로울 때 애인보다도 힘을 주던 담배야. 그러나 너는 알고 보니 원자탄보다 더 나쁜 녀석이었다." 12월 말일 담배를 모아 화형시키고 올해부터는 담배에서 손을 뗐다.

담배를 끊은 지 6개월. 그 사이에 건강이 좋아져 감기, 기침, 가래약을 먹지 않아도 됐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 담배를 끊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의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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