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산에 있다. IMF 한파에 밀려 직장과 가족, 삶을 송두리째 잃고 거리로 내몰렸던 가장들, 철면(鐵面)을 쓰고 차디찬 지하철역사 귀퉁이에 몸을 부렸던 중년들이다. 그들은 숲을 가꾼다. 덩굴을 쳐내고 쓸모없는 나무를 베는 일은 매운 세파의 채찍에 짓이겨진 자신을 가꾸는 일이다. 땀을 흘리고 돈을 벌고 그래서 희망의 싹을 심는 작업이 올해로 4년. 그들은 더 이상 노숙자도 실직자도 아니다. 3년의 숲 가꾸기 공공근로를 마치고 1월 어엿한 정선 자활영림단 단원으로 거듭났다. 아직 가명을 대고 렌즈 앞에선 고개를 떨구지만 조심스레 세상에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숲을 가꾸며 삶을 가꾼다
오전5시 강원 정선군 북면 여량5리 아우라지 자개민박. 불이 켜진 방마다 "잘 잤어" 친근한 아침 인사가 오가고 세수하고 장비 챙기는 움직임으로 옥수수 밭 사이 웅크린 숙소는 이내 술렁인다.
웬만한 차는 오르지 못하는 울퉁불퉁 임도(林道)를 따라 1시간, 다시 위태위태 길도 없는 계곡을 기다시피 해 1시간. "처음 오르긴 힘들 텐데" 하던 으름장처럼 땀으로 범벅이 되고 입 안이 쩍쩍 마를 무렵 구절리 자개골 해발 900m 국유림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겸해 유대구(48) 반장의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 "20m 간격을 유지하고 비가 와서 미끄러우니 안전사고 주의합시다." "넵!" 기합과 함께 기름통(10㎏)을 등에 두르고 전기톱(7㎏)을 손에 쥔 단원들이 뿔뿔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분당 1만2,000번 회전하는 전기톱의 굉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와 폐부를 찌르고 깊은 산골의 고요를 찢었다. "넘어간다!" 고함과 함께 10여m 길이의 잡목이 맥없이 쓰러졌다.
간벌 작업을 처음 보는 사람이야 신기할 법도 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무의 성장을 막는 덩굴을 치고 잔가지를 자르는 일은 몸만 고될 뿐 단원들에겐 새로울 것도 없는 단순 작업이다. 하지만 3만2,000원의 일당 벌이였던 공공근로와 달리 이번 일은 자활영림단 간판을 달고 떳떳하게 산림청과 계약을 맺은 일이라 단원들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터. 간벌할 나무 고르는 일부터 조심스럽다.
2000년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자 시설인 '서울 자유의 집'을 통해 정선 태백 울진 등지로 '숲 가꾸기 공공근로사업'에 나설 때만 해도 도피 반, 포기 반의 심정이었다. 3년 동안 100여명이 들고 난 까닭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노숙 중독 탓이었다. 물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등 행운을 누린 이들도 몇몇 있다.
그나마 낙오된 인생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공공근로 사업이 지난해 끝났다. 독하게 마음 먹고 버틴 사람들에게 다시 좌절의 수렁이 닥쳤지만 세상의 편견을 버리고 이들을 지켜보던 산림청이 자활영림단을 구성할 기회를 줬다. 출신지도 나이도 각각인 17명의 정선 자활영림단은 그렇게 꾸려졌다.
첫 사업은 고비덕 국유림 75㏊(계약액 9,200만원)의 간벌작업. 4월 시작해 지난달 말 끝난 작업은 정선국유림관리소 유임종 소장으로부터 "설마 했던 걱정을 말끔히 씻어줄 만큼 잘된 공사"라는 칭찬을 들었다. 현재 진행되는 작업은 자개골 40㏊(계약액 4,700만원)의 천연림 보육 사업이다.
올해 계약 목표는 3억원. 운영비를 제하면 1인 당 1,500만원 꼴이다. 벌이가 커져 저축액수가 늘고 일한만큼 벌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이들에겐 더 없는 기쁨이다.
오후6시 귀가 뒤에도 쉴 틈이 없다. 올 초 2명의 동료가 산림기능사 자격증을 딴 일에 자극받은 나머지 단원들은 자격증 공부, 독서, 인터넷 등 자기개발에 열중이다.
"과거는 제발 묻지 마라."
전날 내린 비는 날이 밝자 더 거세졌다. 비 덕분에 챙긴 휴일이지만 단원들은 일 못 나간 게 못내 서운한 눈치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바둑과 TV 시청으로 여가를 즐기는 단원들의 입엔 "오늘 그치겠지? 하루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하는 푸념이 달려있다.
그렇다고 마냥 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미를 들고 나가 올해 빌린 3,000평 옥수수와 콩밭에서 김매기를 시작했다. 한 패는 30여 마리의 닭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부수입도 올리고 무엇보다 가만히 있으면 새까만 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견디기 힘들어서" 하는 노동이다.
그들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먼저 외면한건 세상이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견뎠고, 과거는 지웠다.
옛날 얘기를 물으면 "거기까지" "다 잊었으니 묻지 마쇼" 하고는 뒤로 돌아앉기 일쑤다. 하지만 부슬부슬 적막하게 내리는 빗방울이 가슴 밑바닥에 쌓인 아픈 앙금을 들쑤시면 과거는 눈물방울이 된다.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장남인데 7년 동안 부모님께 연락 한번 못하고… 2년만 더 벌어 꼭 모시고 살겠다."(정여수(50))
-"을지로역에서 노숙 한달, 죽으려고 한강엘 세 번 갔다. 덮고 자던 신문지에서 광고 보고 이곳에 왔다. 초등생 아이한테 돈 부쳐주는 게 유일한 낙이다."(한군산(45))
-"잘 나가는 건축설계사로 사업하다 부도나고 동업자가 모두 들고 튀어 전국을 찾아 헤매다 삶을 놓았다. 입사지원서만 100여 통, 노숙자 쉼터 전전..." (유대구(48))
-"아들은 조카한테 맡기고 쪽방 전전하던 차에 경찰이 자유의 집을 알려줬다. 아들이 대학 졸업하면 같이 사는 게 꿈."(성서울(60))
잊고 싶은 과거를 헤집어 무엇할까마는 단원들의 한결 같은 바람은 더 이상 사람들한테 치이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아우라지
시작이 평탄했던 건 아니다. 여량5리 주민들은 "처음 3개월 동안은 술 마시고 싸우는 등 말도 못했다"고 했다.
서울 자유의 집 직원으로 4년 동안 단원들과 한솥밥을 먹는 이영의(52) 단장의 노력이 오늘의 결실을 맺었다. 그는 엄격한 생활 규율과 꾸준한 상담을 통해 단원들의 자활의지를 도왔다. 이 단장과 단원들의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2001년 이 단장이 철원으로 발령 나자 단원들이 산일 제쳐두고 상경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과거를 회상하던 주민들은 행여 오해할까 봐 한마디씩 덧붙였다. "지금은 아니래요. 인사도 잘하고 마을 일도 도와주고 얼마나 착하다구요. 그 사람들 없으면 못 살아요."
골지천과 송천이 어우러지는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아우라지'는 마음과 마음을 한데 아우르고 있었다.
/정선=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 자활영림단
자활영림단은 2000년 시작한 산림청의 '숲 가꾸기 공공근로사업'이 한 단계 발전된 형태다.
당시 산림청은 서울 자유의 집, 생명의 숲, 전국 영림공동체 소속 노숙자와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근로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 사업기간이 끝나자 산림청은 이들 중 자활의지가 있는 자에게 일정기간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론 임업기능인을 양성하기 위해 올해 1월 17개의 자활영림단(227명)을 조직했다.
1개 자활영림단은 6∼30명으로 이뤄지며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 전체 구성원의 60% 이상이 산림기능사 이상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임업훈련기관에서 임업기능인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마치면 각 국유림관리소와 수의계약을 맺어 간벌, 천연림 보육 등의 국유림 가꾸기 사업을 맡게 된다.
자활영림단은 국유림관리소장의 사업평가를 연 2회 받게 되며 자활의지, 사업능력 등을 고려해 국유림 기능인영림단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산림청은 올해 47억원을 투입해 자활영림단의 재기를 돕고 있으며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예산 배정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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