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영어국문학과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생소한 주장처럼 들리겠지만 이제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릴 때가 됐으므로 필요하다고 본다. 영어국문학과는 영어로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과를 말한다. 영어국문학과는 현재의 영어영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신설되는 학과여야 한다.영어국문학과를 설치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세계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깊이와 폭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서양에 존 로크, 히포크라테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정약용, 허균이 있다. 우리 고전은 세계의 고전이 될 수 있을 만큼 고유성과 독창성이 충분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국수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문화 다원주의 시대에 우리도 우리 것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둘째, 영어국문학은 이미 현실이다.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대형서점에 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 서점 한켠에 별도의 영어국문학 코너가 마련돼 다양한 우리 문학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돼 있는 것이다. 영어국문학과에서 사용할 텍스트가 마련돼 있다는 뜻이다.
셋째, 영어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측면 때문이다. 영어 전용 존(zone)도 좋고 영어특구도 좋지만 우리의 딜레마는 다른 곳에 있다. 영어를 꽤 잘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것을 영어로 설명하는 데 서투르다. 외국인이 우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김치요, 장화홍련이요, 이순신이지 신데렐라나 재크의 콩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것을 영어로 배워본 적이 거의 없고 우리의 것을 영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남의 말로 남의 것만 배운다면 진정한 세계인이 될 수 없다. 미국 회사 디즈니가 만들어낸 작품들을 보면 중국의 '뮬란', 중동의 '신밧드' 등 자기 나라의 문화가 아니다. 디즈니가 왜 남의 것을 찾는가. 소재의 신선함 때문이다. 이들에게 우리의 이순신을 영어로 소개한다면 오히려 반가워 할 것이다.
어차피 배워야 할 영어라면 우리 것부터 영어로 배우자. 젊은이들에게 영어로 우리 고전을 가르치자. 이제 우리도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릴 때가 되었다. 우리 정신까지 영어로 지배하게 만들 작정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영어는 지배어가 아니라 세계어일 뿐이고 영어는 우리의 시장(市場)일 뿐이다.
이 경 근 서울 한가람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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