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쓰자니 약간은 계면쩍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신문 또한 자주 저지르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쓰려는 이유는 더 이상 버려둘 수 없어서이다. 토론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과연 말을 제대로 하고 있나 방송언어를 점검해보았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이 텔레비전 뉴스. 말은 길게 하지만 담긴 정보는 적다. 문장은 여러 차례 비틀어 얼른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뉴스 전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인일수록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도 뉴스를 들으면 더욱 실감난다. 잘못된 방송언어는 다시 생활로 파고들어 일상어를 파괴한다. 최근 지상파 방송 3사에서 흘러나온 뉴스를 들어보았다. 문제가 심각하다.명사를 남용해 억지 문장을 꾸민다
<특혜성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혜를 베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우 당혹해하고 있습니다
<여야간에 격돌이 불가피합니다> 여야가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굉장히 많은 우려를 표시했고> 매우 크게 걱정했고
<600만 달러 이상의 계약고를 올렸습니다> 600만달러 어치 이상 판매계약을 맺었습니다
<옆 건물로의 대피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옆 건물로는 대피할 수 없었습니다
<신당파와 반대파의 타협을 위한 다양한 중재노력이 계속됐습니다> 타협을 위해 여러 가지로 중재를 계속했습니다
<관련 계좌추적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계좌 추적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제대로 된 행정기관의 단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행정기관은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3기 라인 착공도 내년에서 올해로 앞당겨> 3기 라인공사도 내년이 아닌 올해 시작해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당초 내년 시행에서 올해부터 앞당겨 실시하는 쪽으로> 소득공제도 내년이 아니라 올해부터 앞당겨 확대하기로
<다른 부문의 특소세 인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부문의 특소세는 내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계좌추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좌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할 것'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북한이 이미 영변에 핵재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 cia가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 CIA는 북한이 이미 영변에서 핵재처리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불이 날 당시 출입문은 이처럼 잠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확인 결과 불이 났을 때 출입문은 이처럼 잠기지 않았습니다
피동태나 수동형을 너무 많이 쓴다
<격렬한 시위가 발생해 (차량이) 시위대에 의해 불에 탔습니다> 격렬한 시위를 벌여 (차들을) 불태웠습니다
<재처리 시설을 가동했다는 징후가 아직 포착되지 못했다는> 징후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선수단, 응원단은 직항로로 김해에 들어오기로 되었습니다>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선수단 입촌식에는 인공기가 게양되고> 인공기를 게양하고
<이 컴퓨터는 한 가장에 의해 내던져진 것이었습니다> 가장이 내던진 것입니다
쓸데없이 어려운 한자어를 즐긴다. 특히 부자연스러운 행정·사법용어를 그대로 따라 쓴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손발을 깨끗이 하고
<용의자 신병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혐의자를 잡지 못하면서
<카메라폰 반입을 전면 통제한다는> 카메라폰을 절대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진상을 알아내고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즉시 조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보리혼식 장려를 촉구하는> 보리혼식을 늘려달라는
<공사기간에 대한 압박감때문에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다 보니까> 공사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서두르다보니
<초동진화가 지체되는 등> 초기에 불길을 잡지못하는 등
안써도 되는 '00하고 있다'는 표현
<동조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300내지 500마리가 잡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잡힙니다
<지금까지 8개의 사이트만 해킹되는 등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조사결과 지금까지 8개 사이트만 해킹되어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조속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는 중입니다.
'00의 경우' '에 대해서'와 같은 어색한 표현
<일본의 경우, 취업이 쉽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취업이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스폭발이나 방화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가스폭발이나 방화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선장 안씨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안씨를 조사중입니다.
<폭주차량과 불법개조차량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여> 폭주차량과 불법개조차량을 집중 단속해
<박지원 씨와 김영완 씨 등에 대한 개인 계좌 추적도 벌일 방침입니다.> 박지원씨와 김영완씨 관련 계좌도 추적할 방침입니다
배운 사람이 더 잘 못 말한다
<국립보건원 사무관: 임상적 증상을 볼 때 볼거리로 판단되어지고> 증세를 보면 볼거리로 여겨지며
<전자업체 사장 :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일본 업체들보다 다소 공격적인 포지션이 우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당 대변인 1 : 딱딱한 정치 공세 형식을 파괴하고 활발하고 역동적인 정책 토론을 통해서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설 것입니다> 딱딱한 정치 공세를 하지 않고 정책토론을 활발하게 벌여
<정당 대변인 2 : 특검법과 예산안을 연계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검법과 예산안 처리를 연계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대학교수 : 비디오를 본 결과 그것은 원각사에서 사용되었던 장대석 건축유구다, 이렇게 판단되었습니다> 비디오를 보니 그것은 원각사에서 사용한 장대석과 건축유구 같습니다
<청와대 보좌관 : 다자 대화 성사를 위해서 중국 정부가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 해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요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감독 : 굉장히 퓨젼화되어졌다고나 할까> 굉장히 퓨전화했다고나 할까
도움말 주신 분 = 이오덕씨,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상황해설 기사서 책임회피표현 문제"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정확한 우리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황을 해설하는 기사를 쓰면서 평가의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는 표현법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송 뿐 아니라 신문에서도 '평가된다' '전망된다' '분석이다'는 등의 표현을 즐겨 쓰는데 이 것은 "주관적인 사고를 마치 객관적인 사고인양 가장하는 태도이며 언론의 책임회피 경향을 잘 보여준다"고 남 회장은 비판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중국방문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중대한 전기가 될 전망입니다" "검찰이 수사권을 쥐기 위한 대응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수사에 대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같은 말에서 분석이나 전망의 주체는 기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표현을 쓰면 마치 대다수가 그렇게 평가한 것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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