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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박동진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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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박동진 명창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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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 명창은 TV광고 덕에 국민정서 속에 편안한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어느날 그는 '제비 몰러 나간다-'라는 판소리 흥보가 중의 한 대목을 구수한 목소리로 들려준 후, 느닷없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그러나 국악계에서 그가 유명해진 것은 68년 국내 최초로 흥보가를 완창했기 때문이었다. 다섯 시간에 걸친 긴 공연이었다. 전에는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듬해는 춘향가를 완창했으며(8시간), 이어 심청가 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차례로 완창하는 기록을 세웠다. 대중이 '제비 몰러 나간다-'를 듣고 새삼 우리 판소리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의 일이다.■ 평민문화가 꽃 피기 시작한 조선 숙종 무렵부터 널리 보급된 판소리는 광대의 소리와 대사로 이루어진다. 판소리는 일제시대 이후 사양길로 들어섰다가, 1993년 '서편제'에서 아름다움과 장르적 건재를 대중적으로 활짝 드러냈다. 영화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또 하나의 눈부신 부활이었다. 임권택 감독에 오정해 김명곤 김규철이 출연한 이 영화는 득음을 하기 위한 판소리꾼의 예술적 집념을 아름답게 그렸다. 관객은 판소리와 외로운 부녀의 비극적 삶에 감동했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 관객동원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국내외 영화제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 판소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19세기의 신재효다. 양반 출신에 부유했던 그는 판소리 명창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연구에 몰두했다. 계통 없이 불러오던 광대소리를 통일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등 여섯 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어구를 실감나게 고쳐 독특한 사설문학을 이룩했다. 지금 그의 고택 자리에는 판소리박물관이 세워졌고, 그가 노래청을 두고 제자를 길러낸 옛집도 복원되었다. 조선의 대표적 메세나 운동가였던 그에 의해 판소리는 보존되고 또 형식적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으니, 그의 선구자적 안목이 놀랍다.

■ 8일 87세로 박동진 명창이 타계했다. 우리 판소리계의 한 거목이 스러진 셈이다. 거친 듯하나 곰삭은 목소리로 쏟아내는 즉흥적 사설, 거칠 것 없는 육담, 풍자로 청중을 휘어잡던 그는 이 시대의 큰 광대였다. 그의 열정이 대중에게 잊혀져 가던 판소리를 싱싱하게 부흥시켰다. 그의 완창에 자극받아 수많은 남녀명창이 앞 다퉈 완창 판소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또 그는 고향 충남 공주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세워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한 탁월한 예인의 부족함 없는 초상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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