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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동진선생 영전에/"우리 것" 고집한 예술가 광대여,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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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동진선생 영전에/"우리 것" 고집한 예술가 광대여, 편히 잠드소서

입력
200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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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박동진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1916년 생이시니 우리나이로는 88세, 그만하면 천수를 누리셨다고 할 만하지만 선생의 죽음이 충격으로 와 닿는 것은 판소리에서 선생이 차지하신 위치가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이제 누가 있어 선생을 대신한단 말인가.박동진 선생은 생전에 늘 자기를 '광대'로 불러주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광대로 남고자 하였다. '광대'는 우리 민족의 전통 예술을 담당하던 계층이었지만 천민이었기 때문에 보통 소리꾼들은 자신을 '광대'로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든 '광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런데도 박동진 선생은 스스로 '광대'로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또 광대로서 충실하고자 했으며, 광대로 남고자 했다. 도대체 광대가 무엇이기에? 선생에게 광대는 '예술가'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박동진 선생이 굳이 광대라는 이름을 자기 것으로 고집했던 이유는 판소리가 예술이라는 것, 그러기 때문에 자신은 예술가라는 것, 그리고 광대는 판소리를 부르는 예술가를 가리키는 전래의 명칭이라는 데 대한 강한 주장이었다.

소리꾼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해서 주장이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박동진 선생이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판소리는 촌스럽고 천한 것이어서 감히 '예술'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서양 음악만이 예술이고, 양반 귀족들의 음악만 예술이지, 판소리같이 무지렁이들이 부르고 즐기는 노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촌스럽고 창피한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기에 박동진 선생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 될 수 있었다.

1968년 선생이 처음으로 시도했던 여섯 시간에 걸친 '흥보가' 완창 발표회는 시들어가던 판소리의 운명을 되돌려 놓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던 판소리가 실은 시작과 끝이 있는 긴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완전한 판소리는 참으로 위대한 예술이며, 판소리를 부르는 창자 또한 위대한 예술가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판소리가 재미있는 예술이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지금도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실증해 보였다. 장장 여섯 시간 동안 청중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았던 비결은 바로 사라져가던 '재담'의 전통을 판소리 속에 되살려낸 데 있었다. 이날 이후 박동진은 수많은 청중을 몰고 다녔다. 박동진 개인의 성공은 곧 판소리의 부활로 이어졌다.

선생은 남들이 내다버린 판소리를 붙들고, 판소리를 위해서, 판소리와 함께 일생을 살았다. 창이 사라진 일곱 바탕 판소리의 복원, 성웅 이순신, 성서 판소리와 같은 창작 판소리의 창작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박동진 선생은 판소리와 함께 살면서, 그렇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선생보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은 많다. 선생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동진 선생처럼 우리가 버린 것을 다시 거두어 가치 있는 유산으로 되돌려 준 사람은 많지 않다. 여든여덟의 천수를 누리시고 가셨음에도 선생의 죽음이 너무 일찍 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선생의 이런 발자취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참으로 위대했던 한 사람의 광대를 떠나보낸다. 선생이 태어나서 자라고, 그리고 말년을 보냈던 백제의 옛 고을 공주가 한 동안 적막하겠다. 또 다른 광대가 그 빈 자리를 메울 때까지는.

박동진 명창 광대여, 편히 잠드소서.

최 동 현 군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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