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식 노사 관계의 한국적 적용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한국은 개화기이래 해외 모델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단적인 예로 우리의 경제성장 모델이 일본 모델을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지난 10여년 간 뉴질랜드식 행정개혁, 북구식 복지국가, 독일식 통일방안, 영국의 제3의 길 등 다양한 모델들이 각종 개혁에 원용 내지는 언급되어 왔다. 학계는 또 어떤가? 종속이론,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 근대화 이론, 헤게모니 이론, 탈 근대화 이론 등 보수나 진보할 것 없이 한국은 해외 이론과 모델의 어김없는 실험장이었다.
이와 같은 해외 모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후발 국가는 선발 국가와 다른 경로를 통해 발전하지만, 선발 국가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다. 일찍이 일본은 프러시아 등 서구의 경험을 학습했고,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 또한 구 소련으로부터 배웠다. 그러나 이런 학습 과정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과 같이 자신들의 전통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외국을 받아들이는 유형과 우리처럼 자신의 전통에 대한 무시와 경멸을 통해 학습하는 유형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사회, 제도, 의식 등이 산업화가 성공함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축적하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멋'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제도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구체적'인 지식을 말한다. 얼마 전 필자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와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자신을 역사학자로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산업혁명기에 영국의 한 마을의 변화과정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소상히 소개해 주었던 점이다. 즉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현실적 대안들은 이처럼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것이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우리의 제도와 정책의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가는 반성할 일이다. 최근의 노사 관계 논의에서도 네덜란드 모델이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주 많은 반면, 우리에게 맞는 모델은 무엇이며 한국적 노사관계의 특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이런 한국의 지적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럴 듯 해보이는 공허한 지식들이 도입되어 편편히 집산해 있는 것이 우리 지식 사회의 현실이다.
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이, 그것도 문제 상황에 직면해서야 성급히 외국의 모델을 들고 나오는 현상은 문제해결에 도움도 안되면서 논란만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한 학계나 언론계의 막무가내식 비판도 문제가 있다. 늦을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진정 시급한 것은 우리 현실에 적합한 제도의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 지식의 생산이다.
이를 위해 장기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지난 5년 동안 무분별하게 도입된 각종 서구식 제도의 한국적 적응 양태를 상세히 파악해야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문제는 보수-진보의 양분법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서구식 제도와 한국적 특수성이 충돌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정책적 혼동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항상 구체적인 분석 위에서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고안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경험적 기록을 축적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멋만 있고 비현실적인, 허망한 논쟁은 접어야 할 때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