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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19> 자비보살 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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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19> 자비보살 고 암

입력
200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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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 무자(趙州 無字)의 열 가지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성)"다만 칼날 위의 길을 갈 뿐입니다(但行 劍上路·단행 검상로)." (고암)

-세존이 영상회상에서 가섭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신 뜻은?

"사자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습니다(獅子窟中 無異獸·사자굴중 무이수)."

-육조스님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

고암은 일어나 세 번 절을 한 뒤 답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습니다(天高地厚·천고지후)."

고암이 이번에는 스승 용성에게 물었다.

"스님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용성은 갑자기 주장자를 들어 방바닥을 세 번 내리치며 제자에게 반문했다.

-너의 가풍은 무엇이냐!

고암도 주장자를 들어 세 번 내리쳤다.

용성은 제자의 견성(見性)을 인가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렸다.

부처와 조사도 원래 알지 못하고(佛祖元不會·불조원불회)

머리를 흔드는 도리를 나 또한 알지 못하네(掉頭吾不知·도두오부지)

운문의 호떡은 둥굴고(雲門胡餠團·운문호병단)

진주의 무는 길기도 하네(鎭州蘿蔔長·진주나복장 )

용성은 고암의 오도적 세계를 운문의 가풍에 비유했다. 운문의 호떡과 진주의 무는 유명한 화두다. 깨달음을 특별한 곳에서 구하려는 마음은 분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를 버리고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참 나(眞我·진아)를 찾으라는 공안이다. 고암은 혜월(慧月) 문하에서 첫 깨달음의 희열을 경험한다.

선정삼매는 항아리 속의 일월같고(禪定三昧壺中日月·선정삼매호중일월 )

시원한 바람부니 가슴속엔 일이 없네( 風吹來胸中無事·양풍취래흉중무사)

고암의 오도송이다. 호중은 선경을 상징하는 도가(道家)의 언어다. 일월은 시간을 초월한 일월장(日月長)의 의미로 해석된다. 항아리 속의 오랜 세월은 그래서 깨달음의 세계를 이른다. 무사는 무심의 경지에 접어든 도인의 일상사가 아닌가.

"숙연인지 중만 보면 따라가고 싶었다. 17세 되던 늦은 여름 우연히 만난 걸승을 따라 도봉산 회룡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절에서 자고 나니 아직 백의의 몸이지만 마음만은 중이 다 된 것 같았다." 고암이 밝힌 법연(法緣)이다. 부모의 결혼 권유를 뿌리친 고암상언(古庵詳彦·1899∼1988)의 발걸음은 절로 향했다. 만해(萬海) 용성(龍城)과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고암을 항일운동으로 이끌었다. 용성은 고암의 내적 개안(開眼)에 불을 지핀 스승이었다.

나주에서 보살법회가 열렸다. 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부엌은 어두웠다. 갑자기 부엌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마지(摩旨·부처에 올리는 공양) 그릇을 한 여신도가 요강으로 착각, 실례를 한 것이다. 그 여신도는 넋이 나간 듯 했다. 고암은 "부처님이 보살님으로 하여금 복을 짓게 하려고 그리하였으니 그 그릇은 치우고 새 마지그릇을 사다가 올리십시오" 하며 어려운 매듭을 슬기롭게 풀도록 일렀다. 고암이 3번째 종정임기를 마친 뒤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을 때 였다. "이런 노인네가 여길 다 올랐네. 영감님 연세가 어찌 되셨소." 한 남자가 무례하게 물었다. 시자가 "여든 여덟 되십니다" 고 대신 대답했다. 그는 고암의 어깨를 툭 치면서 "영감님, 오래 사십시오" 하고는 돌아섰다. 분을 참지 못하던 시자를 달랜 고암은 그의 등을 향해 합장하며 "감사합니다" 고 답례했다. 고암의 법어집 '자비보살의 길'에 실린 일화들이다.

고암은 자비보살로 불렸다. 고암만큼 자비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육화(肉化)한 선사도 그리 많지 않다. 부처는 지혜와 자비를 두 법륜으로 삼아 중생을 제도했다. 자비와 하심이 빚어낸 자애는 고암불교의 가풍이 됐다. "필시 무엇이 잘못된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고암은 처음 종정추대 소식을 듣고 고사했다. 고암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3번이나 종정직을 맡아야 했다. 고암의 하심과 자비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지식인은 배우지 못한 사람, 권력자는 국민, 부자는 가난한 사람, 강자는 약자를 멸시하고 있다. 무명에 얽매인 자기를 밝게 보는 마음이 없으므로 남을 헤아려 볼 수 없는 것이다. 불신의 쇠사슬을 거두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견지해야 한다." 사무량심이 무엇인가. 중생을 한없이 어여삐 여기는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마음이 아닌가. 고암에게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선(善)의 방향으로 마음을 끌고 가는, 그런 경계가 바로 고암이 밝힌 깨달음이다.

"민족, 국경, 피부색, 문화의 이동(異同)은 왕성한 생명의 나무의 색깔이라 할 것이다. 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질서 위에서 신뢰와 협동으로 인간신성(人間神聖)을 보장하며, 나아가 인간이 지닌 생명의 내실공덕을 발현할 때 평화와 번영은 구현된다. 불신과 아집으로 대립한다면 하나 밖에 없는 세계수(世界樹)는 쇠약해져 고사하고 중생은 도탄에 빠질 것이다." 고암은 인간정신의 회복을 심정즉국토정(心淨卽國土淨)의 화두로 정리한다. 원각경을 인용한 이 법어는 마음이 깨끗하면 국토가 청정해진다는 할이요 방이다. 인간의 원초적 고뇌, 즉 탐진치(貪瞋癡)의 삼독이 없어질 때 진정한 평화는 이뤄진다. 세계는 강자의 독무대가 아니다. 강자도 약자도 공동의 세계수 아래서 존재한다. 고암은 이렇게 심정즉국토정의 지평을 세계로 확산시킨다.

"부처님은 광명의 상징이다. 어두운 세상에 광명의 등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평화의 상징이다. 평화의 법음을 가득 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자비의 상징이다. 메마르고 불타고 있는 곳에서 대비원력으로 그 발자취를 나타내신 것이다. 광명 평화 자비의 서운(瑞雲)을 펼쳐 어두운 현실을 니르바나(열반)의 세계로 이끌자."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문이다. 고암은 무명을 삼키고 삼독을 죽인 사람 만이 이 날을 기쁘게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권위보다 자애, 난해한 법어보다 어머니의 목소리로 중생의 마음을 움직여온 고암의 육신에도 가야산의 낙조가 깃들었다. 1988년 10월25일, '가야산에 단풍이 짙게 물들었으니 / 상강이라 낙엽지면 뿌리로 돌아가지'라는 열반송처럼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세수 89, 법랍 71세로 열반에 들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임제·운문의 "殺佛殺祖" 자아인식 외침으로 해석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높다. 삼계가 모두 고통 뿐인데 무엇이 즐겁겠는가(天上天下 唯我獨存 三界皆苦 何可樂子·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하가낙자)." 석가세존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 손으로 하늘,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서응경(瑞應經)은 전한다. 이 구절은 석가가 탄생직후에 설한 것이기 때문에 탄생게(誕生偈) 라고도 한다. 흔히 석가 자신의 위대성만을 상징하는 선언으로 오해 받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극적으로 천명한 말이다.

중국 운문종의 비조 운문(雲門·?∼949)은 탄생게에 대해 이렇게 외쳤다.

"내가 그 때 보았다면 한 방에 쳐 죽여 개밥(喫狗·끽구)으로 주어 천하태평을 도모하는 데 한 몫 했을 텐데."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자기 교주를 때려죽여서 개밥으로 던져주겠다니. 더구나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절집에서. 하지만 운문의 참 뜻은 그게 아니다. 교리나 교주에 얽매이지 말라는 촌철살인의 법음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臨濟)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선풍과 맥을 같이 한다. 운문의 유명한 끽구자 화두는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릇 사람들은 신앙을 갖게 되면 교리에 집착하고 교주를 신처럼 우러러 받든다. 그런 맹목적인 집착은 드높은 종교의 지평을 올바르게 볼 시력을 앗아간다. 어떤 신앙을 갖더라도 한 종교가 지향하는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종교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된다.

선의 골수를 선지(禪旨)라고 부른다. 선지는 선사가 수십 년 고행정진 끝에 얻은 부처의 혜명(慧命)이자 진리의 샘이다. 고암은 임제, 운문의 가풍을 토대로 독창적인 선지를 가꿨다. 정휴(正休·구미 해운사주지)는 "고암스님은 운문의 외침을 번뇌와 무명의 속박에 갇혀 있는 자아를 인식하는 발언으로 해석했다. 나아가 이를 절실한 인간선언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 연보

1899.10.5. 경기 파주출생, 속성 양주 윤(尹)씨

1917.7 해인사에서 득도(得度), 법명 상언,

법호 고암

1938 대오(大悟), 용성의 전법게 받음

1958.9 직지사 주지

1968.7 조계종 3대 종정

1972.7 4대 종정

1978.5 6대 종정

1988.10.25. 세수 89, 법랍 71세로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입적(入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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