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창업장려, 자금지원 중심의 '온실형' 정책들이 재검토되고, 업체간 경쟁과 인수합병(M&A)을 북돋는 '정글형' 정책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2001년 이후 극심한 침체를 겪어온 중소벤처업계가 한바탕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란 전망과 함께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구조조정 통해 건전한 벤처 생태계 육성
정부의 태도 변화는 기존 정책에 대한 재검토에서 시작했다. 중소기업청은 이달초 기존 중소벤처지원정책의 대대적 정비 계획을 밝혔다. 첫 단추는 이들 정책에 대한 '일몰제' 도입이다. 지원 정책에 대한 상시평가제를 도입해,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는 제도는 즉각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11월말까지 기존 정책의 일제 점검에 나서겠다"며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했다.
지난달 말에는 중소기업청과 정보통신부가 각각 '중소벤처기업 M&A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들 방안은 중소벤처기업들간 합병 심사요건 완화 소규모 영업 양도 절차 단순화 전략적 제휴 확대를 위한 주식교환 제도 개선 M&A펀드 운영 및 투자활동에 대한 각종 제한 규정 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M&A투자 재원까지 내놓는다. 정통부와 중기청은 각각 500억원과 1,000억원을 투자, M&A추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독자적인 M&A 활동에 나서는 펀드를 결성키로 했다.
이와 관련 중기청 관계자는 "경쟁력을 상실한 벤처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옥석을 가리는 구조조정을 거쳐 '선택과 집중'에 따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기대감'과 '거품 우려' 교차
정부의 신(新)중소벤처정책은 '무분별한 지원대신 시장원리에 따른 벤처 생태계 정립'으로 요약된다. 그 방편으로 채택된 것이 M&A 활성화다. 업체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과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어온 중소벤처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정책 전환이 구조조정 바람을 불러일으켜 업계 경쟁력 강화에 한 몫 하리란 기대가 크다. 그러나 M&A바람을 탄 또다른 벤처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장 영향을 받을 벤처캐피털 업계는 한층 고무돼 있다. 한국기술투자(KTIC)의 이중석 이사는 "코스닥 활성화와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번 방안에 포함된 주식 교환 및 매수 청구권 제도 개정, M&A 투자펀드 조성 및 M&A 투자관련 제도 완화 등이 업계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다.
또 사모 M&A펀드,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벤처투자회사(창투사) 등 목적에 따른 업체간 구분 벽이 낮아지면서 벤처 캐피털 업계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 전망이다.
한편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무분별한 기업 인수 및 매각 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코스닥을 뜨겁게 달궜던 M&A와 기업인수후개발(A&D) 바람이 다시 재연된다면 중소벤처업계 구조조정이라는 순기능 전에 기업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부작용이 시장을 뒤덮으리란 지적이다. 이 경우 퇴출돼야 할 업체들이 투자이익을 노린 펀드들에 의해 무리하게 M&A되면서 오히려 우량벤처를 부실화할 공산이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각종 뒷거래가 판을 치면서 또다른 벤처 비리의 온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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