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만 일병('태극기 휘날리며')은 불만이 많아 늘 투덜거림을 입에 달고 살지만 고단한 전투에 지친 병사들에겐 인간미 넘치는 형님이다. 놀새 강일평('남남북녀')은 북한 날라리로 옌볜에서 관광 가이드로 활동하면서 한국 관광객에게 적당히 사기도 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이런 역을 두루 능청맞게 소화할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공형진(31)이다. '파이란'의 맛깔스러운 연기로 충무로의 조연 중 캐스팅 우선 순위 1, 2위를 다투는 그가 현재 찍고 있는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남남북녀'. '위대한 유산'과 '오 브라더스'에도 우정출연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는 공형진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영화. 1999년 영화 '쉬리'에 출연하기 위해 몇 달을 매일 영화사에 출근했으나 그토록 원하던 '낙하산' 역은 다른 배우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4년 후 감독은 "형진이 너를 생각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액션 배우로 거듭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고달프다"고 말하지만 얼굴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감개무량!'
대체 왜 공형진을 원하는 감독이 이렇게 많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반기 개봉해 실패한 두 영화에 그 해답이 있다. '별'과 '블루'는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지만 "그나마 공형진 때문에 웃었다"는 게 많은 관객들의 평이었다. 설령 그가 비슷비슷한 조연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 싫증이 났다 하더라도, 스크린에서 유유자적 코믹 연기를 하면서 관객에게 서비스하는 것을 보면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영화는 배우 혼자 노는 데가 아니다. 배우들과 조화를 이루는 연기를 보여야지, 혼자만 튀는 연기를 보이거나 다른 배우들 죽고 영화도 죽었는데 혼자 잘 나 보이는 영화라면 그건 실패다."
그런 그가 첫 공동 주연을 맡았다. 정준호와 공동 주연하는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그는 3개월 후면 7년 군대 생활을 마치는 북한의 말년 상급 병사 역을 맡았다. 낙천적 성격이지만 당연히 군기는 빠진 딱 공형진 스타일의 배역이다. 낚시하다가 깜박 잠이 들어 남한으로 떠내려온 북한 장교와 병사의 이야기다.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면서 엘리트 장교인 대좌 동지와 티격태격하는 얘기다. 화해할 수 없는 두 캐릭터의 웃음과 눈물이 잘 버무려질 것이다."
시나리오보다는 감독, 배우를 많이 보는 편이다. 정에도 자주 이끌리고. "전 현장에서 '안녕하세요. (연기) 시작하시죠'하는 식이라면 못해요. 동료 배우와 충분히 교감하고 믿어주는 분위기가 중요하죠." 현장에서 손짓 하나, 대사 하나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코믹하지만, 코미디 배우는 아니다. 그가 여태까지 선택한 영화 중 코미디 영화는 없었다. "대박 영화 물론 부럽지요. 하지만 성격파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면 그런 (코미디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평범한듯 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를 하면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숀 펜, 게리 올드먼, 잭 니컬슨 등을 좋아한다는 공형진. 인상을 살짝 푸니 젊을 적 잭 니컬슨의 웃음이 묻어 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