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사랑하고 믿으면서 사는 일만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 위에서 기쁜 큰 위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삶의 많은 부분을 메워주신 데 대하여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면서."지난달 30일 검찰 내부 전용통신망을 통해 전국 1,400여 검사들에게 보낸 강금실 법무장관의 이메일이 화제다. 마치 한편의 연서(戀書)를 방불케하는 편지를 놓고 검찰내부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도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주된 반응은 장관이라는 직책에 견주어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취임초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검찰개혁을 과감히 이끌 수 있는 '철의 여인'이라고 까지 불리웠던 그의 이미지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다는 평가가 많아 보인다.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인 강장관은 임명당시 검찰조직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강장관은 건국이래 최대규모의 기수파괴 인사를 강단있게 단행하고 모든 검사를 두루 만나는 등 의욕적 활동을 통해 조직을 큰 무리없이 통할해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검찰을 꽉 쥐는' 데 일견 성공한 것이다. 또한 강장관은 '한총련 수배 해제 전향적 검토''국가보안법 대체입법 필요' 등을 주장하고 대북송금 특검을 반대하는 등 민변 부회장 출신다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줬다.
강장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곧바로 대중적 인기로 나타났다. 인터넷에는 10여개의 팬클럽이 등장했다. 한 시사주간지가 지난달 초 '차세대 여성지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강장관은 박근혜(46.4%), 추미애의원(16.9%)에 이어 15.9%로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강장관은 최근 들어 취임초의 입장과는 다소 어긋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후퇴하는 자세를 보이더니 지난달 말 철도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강장관에 대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사내) 다 합쳐놓은 것 보다 낫다"고 극찬했다.
강장관의 이러한 시각변화가 장관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현실의 벽을 깨닫고 타협한 결과인지 혹은 나름의 소신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를 음미해보면 짚히는 구석이 있다. 강장관은 편지에서 검사들과 점심을 먹다가 그들이 "영혼을 다치지 않고…, 아주 겸허히 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순결한 눈사람'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를 계기로 '검사스러운' 집단이라고 비난받았던 검사들을 '순결한 눈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며 기자는 강장관이 검사들과 접하면서 그들의 조직논리에 동화돼버렸구나 라는 우려감을 금할 수 없었다. 출범초기의 의욕적 모습과는 달리 최근 검찰은 개혁의 청사진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있다. 지난 정권에 줄줄이 잡아넣었던 권력형 비리사건 피의자들이 잇달아 무죄로 풀려나고 나라종금사건의 1차수사가 엉망이었음이 드러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강장관에게 보낸 성원은 오랜 세월동안 '정권의 검찰'이라고 폄하돼왔던 검찰을 진정 '국민의 검찰'로 환골탈태 시켜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강장관은 이제라도 편지를 보내는 식의 편법을 쓰기보다는 정공법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검사들은 러브레터 하나로 하루아침에 장관과 '코드'가 맞춰질 수 있는 순진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윤 승 용 사회1부장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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