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다. 재계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언급하고 있다. '동북아 경제 중심'이라는 참여정부의 경제 슬로건이 바뀐 것은 아닌가 할 정도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돈만이 비전인 것처럼 비칠까봐 2만달러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며 "쾌적하고 문화적인 것보다는 감이 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민들은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슬로건은 일단 희망을 줘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달러'라는 구호는 개발독재의 어두운 면을 교묘히 감추면서 공연히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자신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 곧 '선진 국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측면에서 당시 구호는 성공한 홍보 전략이었던 셈이다.
■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은 것은 1995년이었다. 이 통계가 발표된 두 달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이 2020년에는 3만달러가 넘어 세계 7위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아 국민소득이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지난해 다시 1만달러를 넘어섰지만, 2만달러가 되려면 어려운 관문을 수없이 돌파해야 한다. 단순히 통계 수치만을 봐도 알 수 있다. LG경제연구소는 연 평균 경제성장률을 4.7%로 가정할 때 2012년 이후에야 2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했다. 무역협회는 참여정부의 비전인 2010년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수출이 적어도 연 평균 11%대 증가를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20개국을 볼 때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가는 기간은 평균 9.4년이었다.
■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위기를 겪은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아르헨티나 등으로, 과거와 같은 성장 방식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중진국 함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역협회가 5월에 낸 보고서가 무척 시사적이다. 보고서는 여러 나라의 경험을 분석한 후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노사평화 구축과 인적자원 육성, 구조조정 및 개혁 지속, 지식경제 배양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찬찬히 음미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영국이냐, 아르헨티나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느낌이 갈수록 강하게 든다. '2만달러 시대'라는 구호가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다시 뛰게 만들 수 있을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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