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단연 '건강'이다. 헬스클럽은 아름다운 몸매와 건강을 위해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로 넘친다.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 '보신(補身)주의'는 TV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소재가 됐다. '찾아라 맛있는 TV'(MBC) 같은 맛있는 집 소개 프로그램에서 건강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KBS1)에 이르기까지 건강·음식 관련 프로가 한둘이 아니다. 'VJ특공대'(KBS2), '리얼코리아'(SBS) 등의 교양물이나 아침 정보 프로도 소문난 건강 정보나 '맛집' 소개를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시킨다.
KBS2는 지난달 29일 각종 건강 관련 정보는 물론 식생활 정보까지 소개하는 70분짜리 대형 건강 버라이어티쇼 '비타민'을 황금 시간대인 일요일 밤 10시에 신설했다. '비타민'은 생과 사를 가르는 응급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기본적 응급처치법을 소개하는 '황금의 10분', 세계 장수 노인의 식생활을 보여주는 '장수의 밥상', 스타가 알려주는 '스타스타 건강학', 국민건강 캠페인 'Change Your Life'등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대형 교양물. MBC '느낌표!'와 같은 공익적 시사교양 프로를 갈망해 온 KBS가 회심의 역전 카드로 '보신주의'를 선택했다. '비타민'은 첫 방송에서 시청률 12%대를 기록해 제작진이 고무돼 있다.
SBS도 2월 연예·오락 성격의 '신동엽 남희석의 맨?맨'에 '국민건강보고서', '국민건강식'등 코너를 신설, 건강 아이템을 정면으로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구성 변경 이후 '…맨?맨'은 시청률이 4∼5%나 올라 현재 14∼15%를 유지하고 있다. 또 정통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마저 수요일 밤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 '야인시대', '아내'의 각축 속에서 10%대의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다. '보신주의'는 성공의 보증수표로 자리잡아 본격적 건강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최근의 건강 프로는 최대한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건강 정보에 오락성을 가미한 인포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하다. 전문가가 나와 어려운 질병을 소개하고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방식으로 치료법을 소개하던 시대는 지났다. 같은 내용이라도 시청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어야 한다.
건강 버라이어티쇼 '비타민'은 이런 추세를 분명하게 확인시킨다. '장수의 밥상' 코너에서는 가장 건강한 100세인에 선정된 권명완(103) 할머니와 최고령 남성인 이성수(102) 할아버지의 밥상을 스튜디오로 직접 공수해 온 뒤 전문가의 친절한 해석을 덧붙였다. 앞으로 일본, 요르단, 프랑스, 중국 등 전세계 100세 노인의 밥상을 소개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이어갈 예정이다. 'Change Your Life' 코너는 비만 판정을 받은 강서구 주민 1,000명이 한달 동안 3㎏씩 총 30톤의 몸무게를 줄인다는 참신한 기획으로 눈길을 끌었다. 첫 방송에서는 250명의 몸무게를 한꺼번에 달 수 있는 특수저울까지 선보였다.
'…맨?맨'은 패널로 출연한 연예인의 건강상태를 직접 점검해 시청자가 건강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얼마 전 출연해 유방암 검사를 받은 탤런트 조미령에게 물혹이 6개나 있다는 충격적 진단이 방송을 통해 나간 후 유방암 검사가 크게 늘었을 정도이다. 김현철 PD는 "건강 프로에 나온 주인공을 시청자가 자신에게 투영해 보도록 한다는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최근 '여성비만의 비밀―황금의 산후 3개월', '우리 아이들 몸이 이상하다' 편으로 호평 받은 '생로병사의 비밀'은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례연구를 시도했다. 프로그램의 기존 신뢰도에 이런 아이디어가 더해져 시청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직장인 정모(32·여)씨는 "아토피의 주범이 집 먼지 진드기라는 방송이 나간 다음 주 할인 마트에 갔더니 집 먼지 진드기 살충제 코너가 인산인해를 이뤄 방송의 힘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건강 프로 담당 PD들은 "최근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을 피부로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생로병사의 비밀'의 이강주 PD는 "5분 진료하는 데 30분을 병원에서 기다려야 하는 현퓻【?건강 프로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웃 일본에서는 먹거리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가 TV 편성의 근간을 이룬다. 국내에서도 '비타민', '생방송 잘 먹고 잘 사는 법' 같은 건강 프로가 캠페인 성격을 띠는 것은 고무적 현상이다. SBS '생방송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이윤민 PD는 "국내에서도 식생활 습관이 나빠지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든 만큼 건강 프로가 빨리 자리잡아 시청자가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 식품의 효능이 미처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과장돼 유포되고, 공인되지 않은 치료법이 소개되는 것 등은 적지 않은 문제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TV 속의 '보신주의' 열풍이 국민의 건강을 되찾아 주고,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의료비를 절감하겠다는 기획 취지대로 실현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건강프로서 잇단 '스타탄생'
TV 건강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 의료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특히 딱딱한 내용보다 생활 주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예가 늘어나면서 양방보다 한방 의사들의 출연이 늘어났다. 신문사 의학 전문기자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한의사 이경제ㆍ김소형씨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건강보감’코너가 배출한 대표적 스타 의료인이다. 이들은 드라마 ‘허준’의 히트로한의학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TV 출연이 잦아졌다.
‘기통찬 한의사’로 불리는 이경제씨는 사상의학 전문가로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으로 한의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도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한다.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라는 특이한이력의 김소형씨는 케이블TV,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비만과 다이어트, 현대인의 건강관리 등에 대해 얘기한다. 한방 원리와 다이어트를접목한 ‘김소형의 건강다이어트’를 내기도 했다.여 한의사 최승씨도 최근 SBS ‘신동엽 남희석의 맨Ⅱ맨’을 통해 이름을알렸다. 그는 한방내과 전문의로 한의학에 춤을 접목한 댄스 다이어트를보급해 ‘춤추는 한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검사수치에 대한 분석적 진단을 내려야 하는 양의는 아무래도 다소 오락성이 가미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과 전문의인 표진인씨나 가정의학 전공인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 원장 등이 최근 자주 TV에 출연하는 것도 비교적 ‘말이 통하는’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양의를 전공한 사람 가운데서는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의 방송 출연이 잦다. 현재 KBS1 ‘생로병사의 비밀’ 진행을 맡고 있고 SBS ‘생방송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또 최근 신설된 KBS2‘비타민’의 ‘장수의 밥상’ 코너는 김연수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가 진행을 맡고 있다. ‘…맨Ⅱ맨’의 김현철 PD는 “요즘 건강프로가 어려운내용을 쉽게 풀어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자를 진행자로 발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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