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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5>30대 중산층까지… 여기저기 기러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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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5>30대 중산층까지… 여기저기 기러기아빠

입력
200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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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돈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모았지만 친구들을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기라 느꼈습니다."중견 자산운영업체 N사 서범석(46) 사장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최근 만난 대학동기들 12명중 4명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 "한국에서 아이들이 정정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서 사장과 부인의 확고한 신념이었지만 "아이들이 외국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공부하는데다 3, 4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고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 사장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기러기 아빠가 늘어나고 있다. 수년 전부터 40, 50대의 의사, 변호사, 교수, 외교관 등 전문직 중심으로 태동한 기러기 아빠들이 사교육비의 폭등, 조기유학바람 등을 타고 중산층이나 30대까지 확대되는 추세이다.

기러기 아빠들의 고민

A대 홍보과 J(47) 과장은 2년 전 큰 아들(19)을 중국 베이징(北京)의 고교로 홀로 유학을 보냈고 중국의 대학 입시철이 다가오자 6개월 전 부인도 중국으로 건너갔다. 초등학생인 막내 아들은 서울에 남았지만 가족은 절반씩 한국과 중국으로 나뉜 기러기 가족이 된 것. 자신이 강력히 유학을 권유했지만 J 과장은 본격적 기러기 생활 6개월이 지나자 피로감을 숨길 수 없다. 라면, 햅반, 과일 등 되도록 손이 적게 타는 음식을 해먹지만 집에 일찍 들어와 혼자 밥먹을 때 느끼는 처량함은 눈물겨울 정도다. 홀로 사는 스트레스로 인해 위장병, 심장병 등의 건강 문제도 생겼고 기러기 생활의 장기화로 인해 가끔씩 탈선의 유혹까지 느낀다.

경제문제도 기러기 아빠들의 짐이 되고있다. 직장 안식년 때 미국 텍사스주에 함께 간 고2 아들, 중3 딸, 아내를 그대로 현지에 남겨두고 홀로 귀국해 4년째 기러기 생할을 하고 있는 A대 신문방송학과 K(47) 교수는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전세 놓고 아예 칠순의 홀어머님 밑에서 생활한다. K 교수는 "아침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 그런대로 괜찮고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어려움도 달랠 수 있다. 그러나 K 교수는 돈 문제 때문에 걱정이다. 아이들이 학비가 들지 않는 공립학교에 다니지만 세 가족 생활비로 한달 4,000달러 정도를 송금하고 홀어머님께 드릴 생활비를 제하면 6,000만∼7,000만원대 연봉으로는 내핍생활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중형차를 처분한 뒤 2년 전에 마티즈를 구입했다는 K 교수는 "둘째가 대학 입학할 때까지 앞으로 5년 동안 마이너스 통장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혼자 사는 생활이 장기화되면 일탈 우려는 늘 잠재해 있다. 사업가 신모(36)씨는 지난 해 7월 아내와 남매를 캐나다로 떠나 보낸뒤 올해 초 우연히 만난 여성과 불륜관계를 맺었다. 아내에게 간통죄로 고소 당해 가정이 파경을 맞은 신씨는 사업의 어려움까지 겹쳐 "여보 사랑해요. 잘살아요. 미안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일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서울 강남 A 유학원의 L 대리는 "일찍부터 조기유학을 보낸 30대 기러기 아빠들은 '우리가 돈 버는 기계냐 '는 불만과 함께 '성적 문제'로도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책은 없나

기러기 아빠의 증가는 이런 고통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사교육비가 요구되고 학벌사회가 유지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이런 가운데 이들이 자신를 잘 추스려 가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직장 등에서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연구위원은 "기러기 가족은 서양문화에서 상상할 수도 없지만 자녀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우리현실에서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연구직이나 교수직은 물론 일반직장에서도 안식년 제도 도입, 연월차 휴가 보장 등으로 기러기 가족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왕구기자fab4@hk.co.kr

a 6"기러기 아빠 모임" 대표 박상빈씨

딸 초아(13)양와 아들 진환(11)군, 아내 배숙자(41)씨를 3년전 뉴질랜드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박상빈(42·사진) SNT이사. 박씨는 뉴질랜드 유학전문사이트(www.nzgaza.com)를 운영하며 3년 전부터는 뉴질랜드에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모임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 생활 3년차에 접어든 박씨로부터 혼자 사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유학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들어보았다.

―기러기 아빠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경제적 어려움이다. 월급쟁이 수입이라는게 뻔한데 수입 90%를 보내야 한다. 아내에 대한 걱정도 많다. 혼자서 아이들 교육을 다 책임지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 풀 곳이 없지 않은가. 부부간의 정이라는게 있고 우리 인생도 있는데 아이들 때문에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서글퍼지기도 한다."

―기러기 아빠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취미가 없으면 정말 견디기 어렵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매일 낙담만 하면 못견딘다. 나는 시간 나면 골프를 치고 주말에는 고향(충분 진천) 집에서 토끼와 닭도 키운다. 1개월에 한번은 꼭 기러기 아빠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근처에 사는 기러기 아빠들과는 마음만 내키면 만난다. 다음 달부터는 기러기 아빠 합창단도 꾸려 연말에 뉴질랜드에서 기러기 가족 축제를 벌일 계획이다. 지루하지 않도록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자녀들의 조기 유학을 결심한 예비 기러기 아빠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남들이 보내니까 아이들 보내면 반드시 후회한다. 나는 2년간 준비한 뒤 보냈다. 최소한 6개월 동안은 준비해야 하고 꼭 현지에 가 상황을 직접 살펴본 뒤 결정해야 한다. 가족들이 모두 현지에서 열흘이라도 배낭여행을 하면서 '진짜 이곳은 우리가 살만한 곳이구나'라고 합의하지 않으면 결국은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웬만하면 기러기 아빠 생활은 말리고 싶다. 가족에 대한 믿음과 자제력이 없으면 정말 이 생활은 힘들다. 5년내에 다시 가족과 합칠 생각이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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