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형사합의서에 재산상 손해배상 명목 등의 조건을 명시했다면 보험금에서 합의금 일부가 공제되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서울지법 민사14단독 연운희 판사는 6일 엄모씨가 "형사합의금을 위자료로 보고 보험금에서 공제한 것은 부당하다"며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엄씨는 이에 앞서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가해자인 버스운전기사 권모씨로부터 1,300만원을 받은 뒤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이 "1,300만원은 위자료 성격이므로 보험금에서 700만원을 공제한다"고 판결하자 "납득할 수 없다"며 재차 소송을 내 승소했다.
그동안 형사합의금은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의 일부를 가해자가 선지급하는 것으로 이해돼 왔으며 법원도 이 중 상당액을 보험금에서 공제해왔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피해자의 보상금 액수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다가 가해자가 이후 보험사로부터 선지급금을 돌려받는 경우도 거의 없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엄씨가 권씨와 "합의금 1,300만원을 받되 이는 위자료가 아닌 재산상 손해배상이며, 피고가 향후 갖게 될 보험금청구권을 원고에게 양도한다"고 명시한 합의서가 승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험금 청구권 양도를 통해 권씨에게 지급될 1,300만원의 소유권을 엄씨가 갖게 된데 이어 재산상 손해배상 명목임을 분명히 해 법원이 공제 결정한 7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소송 대리인인 한문철 변호사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보험금 청구권 양도는 고사하고 합의금 성격도 제대로 규정돼 있지 않은 경찰서 양식의 합의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소송은 합의금이 보험금과 별도이고 합의금의 수혜자는 전적으로 피해자라는 점을 확인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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