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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4>수생식물 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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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4>수생식물 순채

입력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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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이렇게 좋은 숲에서 일하면서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어집니다. 문득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면 절로 발길이 가는 산책 코스가 이즈음에는 주로 수생식물원이지요. 수련과 남개연은 이미 꽃이 한창이고 이제 곧 노랑어리연꽃이 잔잔하고 아름답게 수면을 덮을 것입니다.수생식물원은 제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곳에 터를 잡은 여러 식물들 중에는 몇 년에 걸쳐 어렵사리 살려 놓은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니 꼭 이것 저것 챙겨서 보는 식물들도 여럿 있습니다. 비가 자주 오니 물이 차서 어렵사리 정착한 가시연꽃의 잎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걱정되고, 물부추는 포자를 맺었는지 궁금해지지요.

몇 년째 올라오지 않아 마음을 태우고 있는 식물이 있는데 바로 순채입니다. 작년 이맘때 편지에 소개했듯이, 백련을 주신 스님께 순채가 잘 자라서 퍼지면 꼭 나누어드린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채는 예전에 커다란 못에 살던 수생식물입니다. 일부러 키우기도 했지요. 순채 잎이 물 위로 나와 펼쳐지기 전에는 길쭉하니 돌돌 말려 물속에 있는데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우무질에 싸여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순과 함께 먹습니다. 순채국을 끓이기도 하고 무쳐먹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해서 간혹 비싼 일본 음식점에 가면 순채를 맛볼 수 있는데 그건 모두 수입한 것입니다. 우리도 못에 순채를 키우던 시절에는 수출도 했었죠.

다른 수생식물들처럼 한 여름이면 순채도 꽃을 피웁니다. 방패 같은 모양의 반질거리는 잎을 물 위로 가득 펼쳐내고 그 잎의 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올라와 꽃을 피우지요. 그런데 그 꽃 색깔이 아주 독특합니다. 어두운 자주색인 듯도 하고 갈색인 듯도 합니다. 자연에는 정말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색들이 존재하지만 순채 꽃잎과 같은 색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떻게 혼자만 개성 있는 꽃을 가질 수 있을까요?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같이 물에 잎을 띄우고 살아가는 수련은 충매화입니다. 곤충들이 좋아하는 환한 꽃 색깔이 필요하지요, 물의 요정이라고 하는 수련은 볕이 없는 그래서 곤충이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저녁이면 꽃을 닫아 잠을 자므로 이름도 수련(睡蓮)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순채는 꽃잎을 가진 꽃을 피우면서도 풍매화입니다. 순채 꽃 한송이가 피어 있는 기간은 이틀인데 꽃이 핀 첫째 날은 꽃 속의 암술만이 성숙해 암꽃이 됐다가 둘째 날에는 암술은 지고 수술이 성숙해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는 수꽃이 되었다가 지게 됩니다.

이처럼 순채는 적극적으로 곤충을 유인해 효율을 높이는 치열한 삶의 방식을 포기함으로써 경쟁에 뒤지고 그 결과 희귀식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신 흰색이 지천인 이 여름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의 색깔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출세와 성공이라는 쳇바퀴를 빠져 나오면 대신 가족과 사랑을 나눌 시간도 생기고, 이웃을 찾아보는 마음의 빈자리도 만들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삶을 엮어갈 수 있듯이 말입니다. 순채는 "포기하는 만큼 새로이 얻는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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