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현대그룹 비자금 150억원의 계좌추적에 나서, 그 배경에 대한 논란과 함께 파장이 예상된다. 돈 세탁 및 사용처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정치권이 제2특검을 놓고 대립하는 시기에 검찰이 사실상 수사착수를 선언했기 때문이다.검찰이 밝힌 배경은 수사공백으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 공방만 계속하는 정치권에 맡겼다가는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돼, 수사와는 별개로 대검 중수부의 계좌추적팀을 가동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의 조치는 과거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올해 2월 대북송금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검찰은 수사를 유보했고, 또 특검수사 지원을 위해 관련자를 출국금지만 했지, 계좌까지 들춰보진 않았다. 검찰의 계좌추적이 차후 국회가 정할 특검의 수사범위보다 더 넓을 경우도 문제가 복잡해진다.
때문에 검찰이 계좌추적 카드를 꺼낸 것은 정치권과 여론을 향해 수사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150억원 비자금에 대한 한정된 특검만 수용하겠다는 노무현대통령의 입장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검찰이 150억원의 은밀한 세탁과정은 물론 정치권 유입과 사용처 등을 확인할 경우 정치권은 또 한번 파란을 겪을 것을 보인다. 이 점을 우려해 여권의 구주류 등 정치권은 계좌를 무제한적으로 추적하는 검찰보다는 특검에 맡겨 수사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검찰에 수사를 맡기면 정치자금의 뇌관을 건드려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150억원 수사를 맡겠다는 뜻이 아니며 새로운 수사주체가 나타나면 결과물을 넘겨주겠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계좌추적팀을 별도 구성하는 것은 물론 연루된 핵심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벌여, 수사의 밑그림을 이번에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최근 검찰이 '검은 돈과의 전쟁'을 선포,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 기준을 전례 없이 강화한 대목도 정치권을 긴장시키는 대목이다.
앞서 대북송금 특검팀은 2000년 4월8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 최종합의 직전 현대측 계좌에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수백억원 현금이 인출된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팀은 이 가운데 150억원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박지원씨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돈이 사채시장 등에서 돈세탁을 거친 뒤 정계에 대거 유입된 단서가 될 수 있는 연결계좌까지 접근했다가 수사기간이 종료돼 수사를 접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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