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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도시" 파주가 마침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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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도시" 파주가 마침내 뜬다

입력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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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교하면 문발리. 높이가 채 200m도 안 되는 야트막한 심학산 끝자락에 한창 공사 중인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파주출판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5년 전 첫 삽을 뜬 이곳으로 굵직한 국내 단행본 출판사들이 대이주를 시작했다. 글(文)이 일어난다(發)는 자리에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생태문화공간으로 세워지는 파주출판단지는 사실상 올해가 출범 원년이다.한길사 이어 창작과비평사 이주

"30년 만에 처음 갖는 사옥입니다. 테마도시에 새 집을 갖게 돼 더욱 가슴이 설렙니다." 계간지로는 국내 최다 유가 독자를 자랑하는 '창작과비평'을 발행하는 창작과비평사(창비)가 지난달 25일 출판단지 내 2차 지구에 건물을 완공하고 이사했다. 서울이라면 꿈도 못 꿨을 대지 500평, 연건평 495평의 널찍한 4층 건물이다.

창비는 1974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셋방살이를 시작으로 거의 한 해 걸러 서대문구 냉천동, 종로구 신문로, 공평동 등지를 전전했다. 80년대 들어서도 마포구 아현동과 용강동으로 옮겨 다녔으니 고세현 대표이사의 말대로 출판단지의 새 건물로 이사한 것이 여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땅값과 건축비를 합쳐 모두 20억원에 이르는 새 집 장만 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지난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잘 팔린 덕을 톡톡히 봤다.

예술의전당과 경주 보문단지를 지은 김석철씨가 설계한 사옥은 건물 뒤쪽 전면이 유리여서 산 자락이 훤히 보인다. 위로 올라갈수록 평면적이 좁아지는 부분 피라미드 구조이다. 넓은 1층을 편집부와 영업부가 쓰고, 2층은 계간지팀과 총무부가 자리잡았다. 3층은 한국문학도서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파주출판단지 이주는 창비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책 모양을 본 따 건물을 지은 한길사가 출판사로는 제일 먼저 옮겨 왔다. 이어 올해 1월 어린이 교재를 주로 만드는 아이교육, 창비 입주 직전 이공계 서적 전문 출판사인 기한재가 이사했다.

올해 10여 개 출판사 입주 완료

조합 이항규 실장의 말대로 올해가 '파주출판단지 원년'인 것은 창비 입주를 신호로 하반기까지 단행본 출판으로 이름 있는 10여개 회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단지 안에 새 둥지를 틀 계획이기 때문이다. 창비에 이어 동명사가 이달 중 입주하고, 8월에는 양서원과 자유아카데미, 9월에는 민음사 열화당 동녘이 줄줄이 이사 온다. 연말까지 효형출판 문학동네 돌베개 등도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 예정이다. 창비 옆에서 건물 신축이 한창인 국내 최대 매출의 출판 저작권 중개회사 신원에이전시도 이르면 10월 말 파주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인쇄소와 종이 유통회사들은 상당수가 지난해 입주를 완료했다. 보진재 화성프린원 태평양그랜드 신일문화사 에스피티 희망사 도봉금장 등 7개 인쇄소, 종이를 가공 판매하는 지지아이 서울지류유통 등 2개사가 정상 영업 중이다. 2월에는 단지 핵심 건물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완공돼 단지 사업협동조합이 이곳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달에 상업지구 '쌈지' 한 필지(500평) 건물 공사가 완공되면 4층 규모 상가에 최대 50개 점포와 음식점도 들어선다.

통일시대 맞는 테마 도시로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인 데다 이제 막 입주가 시작돼 48만평을 넘는 단지 전체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출판인들의 기대는 대단하다. 파주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이건복 동녘 대표는 "올해 안에 출판도시의 모습이 제법 번듯하게 나올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책 만드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조합 건설본부장을 맡아 집 짓기에 바쁘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현 조합 이사장)가 앞장 서고 건축가 승효상·김영준씨가 도시 전체 건물을 조율해 산과 강과 갈대가 한데 어울리는 출판도시를 만들자는 10여 년 꿈은 이제 정말 결실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이곳은 코 앞에 북녘 땅을 둔 남북 분단의 현장과도 같은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창비 편집주간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경기도로 이주한 지식인들이 한양을 상대화, 실학을 발전시켰듯 파주라는 주변적 실험 도시의 눈으로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보면서 통일시대를 앞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문풍(文風)을 일으킬 것"이라고 파주 시대의 희망을 말했다.

/파주=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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