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정치적 이용은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폐해가 크다. 물론 정치인의 방송 출연은 정책을 직접 유권자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중시하는 TV의 속성상 정책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나 인기에 의해 정치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비난의 소지도 크다.1972년 6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는 정계은퇴를 밝히는 기자회견 중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신문 기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공영방송 NHK 카메라만 남겼다. 신문은 자기가 한 이야기를 왜곡해 보도하지만 TV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은 신문을 뛰어넘는 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탄생에는 방송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민당 내 지지기반이 약한 고이즈미 총리는 TV 중심의 미디어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개혁'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방송 덕을 톡톡히 본 탓인지 고이즈미 총리는 역대 총리 가운데 국회에서 신문과 잡지의 보도내용을 가장 많이 비판한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신문에는 취재원이 불분명한 추측성 보도가 많다는 점을 비판의 근거로 들고 있지만 방송 보도도 사실은 신문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낮다. 오히려 TV 카메라 앞의 퍼포먼스와 화술에 능한 그가 정책 중심의 신문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최근 공개된 일본 국회의원의 소득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의원 평균 소득은 2,693만엔으로 1993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TV 출연료만 수 백만엔에서 1,000만엔 이상인 의원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비 10% 삭감 등으로 국회의원 소득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가운데 TV 출연료에서 명암이 갈린 것이다.
TV 출연료 수입이 대폭 늘어난 것은 대부분 북한 핵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인 우익 성향 의원들이었다. 이들의 인지도와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반면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와 내각 각료의 TV 출연료는 크게 줄었다. TV 출연료가 정치인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의 TV 출연은 선거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정치의 방송 지배'가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소득 공개를 보면 TV 출연이 일부 정치인에 편중돼 있다. TV 출연 여부가 수입의 명암뿐 아니라 선거의 당락까지 가를 수 있음을 감안하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지 않도록 방송사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김경환 일본 조치대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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