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식 지음 그물코 발행·1만2,000원히말라야의 강고트리 산군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탈레이사가르. 해발 6,904m의 이 봉우리는 어느 쪽에서 봐도 무척 경사가 심해서 1979년까지는 감히 누구도 오를 생각을 못했다. 특히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험난하기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악명이 높다. 북벽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구간 '블랙 타워'는 '자살 코스'로도 불린다.
1998년 9월25일 한국 원정대의 세 대원이 탈레이사가르 북벽을 향해 캠프를 출발했다. 다음날 북벽에 도착한 그들은 사흘 째인 28일 정상을 100m 앞둔 지점까지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정상 부근에 구름이 끼었다. 1시간 뒤 구름이 걷혔을 때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정상에 올라 기뻐서 소리 지르고, 껴안고 사진 찍느라 정신 없겠지. 아니면 날씨가 나쁘니 서둘러 다른 길로 내려오는 중이겠지. 캠프에서 기다리던 다른 대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1,300m 아래 지점에서 그들 셋은 한 로프에 몸이 묶인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구름 속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고였다. 김형진 최승철 신상만.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다운' 등반을 추구했던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하늘 오르는 길'은 당시 동행했던 사진작가 손재식이 쓴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기다. '늘 유쾌하고 창의적이었으며 믿음직했던' 숨진 세 친구를 기리면서 원정대가 한국을 출발한 날부터 산을 내려오기까지를 시간을 따라 정리했다.
이 책은 담담하다. 동료들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더 없이 컸을 슬픔조차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세계적 산악인들의 등반기에서 자주 보아온, 죽음과 맞서 싸우며 인간의지의 한계에 도전한 영웅들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드라마 같은 건 없다. 그런 담담함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지은이는 영웅담 대신 원정대의 생활과 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들은 고산병으로 호흡곤란과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음식을 놓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한다. 침낭 안에 들어간 채 툭 하면 방귀를 뀌어 좁은 텐트를 가스실로 만드는 대원을 규탄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일주일 내내 쏟아지는 눈 때문에 꼼짝 못하는 동안 무시무시한 눈사태의 굉음을 들으며 내기장기를 두거나 노래를 부르고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지루함과 불안을 견딘다. 이처럼 사소한 추억이 죽은 이들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그들은 왜 굳이 난코스 중 난코스인 탈레이사가르 북벽을 택했을까. 높이 오르는 것보다 어떻게 오르느냐에 더 큰 가치를 뒀기 때문이다. 물론 두려움과 회의가 없지는 않았다. 다음날이면 북벽에 오를 세 대원과 텐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지은이는 홀로 생각에 잠긴다. '저 곳을 올라야 한단 말이지.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숨소리와 말소리조차 얼어버릴 것 같은 시린 추위에 꽁꽁 언 벽에 매달려 밤을 지새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곳에 왔으며 무엇이 나를 계속 여기에 있게 하는가. 세 대원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떨쳐낸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린 매일 산다고 하지 죽는다고 하지 않는다"면서.
책에는 지은이가 직접 찍은 60여 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찌를 듯 솟아있는 탈레이사가르 북벽의 위용과 주변 경관, 그리고 원정대의 캠프 생활과 등반 모습이 바로 눈 앞에서 보듯 생생한 컷에 담겼다. 죽은 세 젊은이도 사진 속에서 흰 눈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웃고 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은 아름다웠다. 지은이는 그리움에 넘치는 눈길로 돌아본다. "생의 마지막을 같이 맞아도 좋을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그들이 보여준 도전 정신은 봄날 새싹보다 희망차다"고.
책에 인용된 프랑스 산악인 가스통 레뷔파의 다음 말도 기억할 만하다. "산정의 아름다움도, 위대한 공간에서 얻는 자유도, 다시 발견한 자연과의 친밀함도, 산 친구와의 우정 없이는 무미건조하다." "그곳은 신비의 왕국이며, 그곳에 들어가는 무기는 오직 의지와 애정 뿐이다." 이 책은 산사나이들의 그런 우정과 용기, 꿈의 기록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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