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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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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입력
2003.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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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일본의 음악학자가 자기 민족의 음악적 특징을 설명한 글을 읽었다. 놀랍게도 그 글에 등장하는 '일본'이란 단어는 거의 모두 '한국'으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도 국가나 민족에 관해 말할 때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임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이럴 때 만난 책이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1998)였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맞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일'임이 틀림없는데도 '민족주의와 민족어는 너무 예민한 주제들이어서 논의가 차분히 진행되기 어렵다는 사정'을 말해준다.

내게 특히 다가왔던 글은 '예술작품의 국적'. 지은이는 "예술작품은 그것이 태어난 사회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뛰어넘어 보편적 진실이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보편적' 가치를 역설한다. 아울러 '큰 이웃과 잘 지내는 법'이란 글에서는 한국이 주변국과 외교적 마찰을 겪었던 사례와 거기서 지나치게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 손해를 보거나 위신이 실추된 사례를 들고 있다.

이 책은 나의 전공, 국악과 관련해서 두 가지 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첫째, 한국음악을 바라보는 자유로운 시각이다. 한국인이라는 속인주의와 한반도라는 속지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아직도 이 시대 음악평론가들은 국악이나 국악기와 관련된 작품을 판단할 때 그것이 한 개인의 개성적인 작품임에도 '전통 계승'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국가와 민족이 등장할 때 늘 따라붙는 '전통'이라는 가위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한다.

둘째, 좁은 범위의 한국음악에서 벗어나 넓은 영역에서 아시아음악의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아시아음악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고 함께 나눌 것도 많다. 그런데도 민족과 민족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민족에 대해 집착을 버렸을 때 문화를 볼 수 있는 더 큰 시야가 생겨난다.

지난 세기 민족주의는 전쟁의 원인이 되는 등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민족이란 단어가 결부되면 가치판단이 어려워지고, 획일적인 사고나 입장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민족과 연관해서도 부드럽고 다양한 사고를 포용할 필요가 있다.

민족의식이 뚜렷하다고 자부하는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민족과 개인, 국가와 세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윤 중 강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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