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경 지음 들녘 발행·3만2,000원노자는 번역본이 많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책이다. 우리말로 나온 '노자' 번역본만 50종이 넘고, 18세기 후반 라틴어 번역본이 나온 이후 영어 번역본만 250여 종이라고 한다.
성균관대에서 유학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오리건대 방문교수로 있는 저자가 88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번역서에서 '노자'의 핵심 내용을 통치술로 파악한 점이 독특하다.
물론 이런 시각에서 국가를 개인으로 치환하면 '노자'는 흔히 우리가 아는 대로의 처세 교훈집이 된다. 따라서 이 새 번역본에서는 흔히 접했던 신비주의 성향이나 도에 관한 형이상학 등의 추상적 표현은 거의 없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 통치술의 최대 목표는 '장생구시(長生久視)'이며, 통치술의 핵심은 '무위(無爲)'이다. 꼭 통치술의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무위가 '노자'의 핵심 단어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개념틀로 대개 무위는 탐욕을 없애고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일면만 본것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의 관점을 취할 때 무위는 명백하게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목적 의식을 가진 개념이 된다. 무위는 신하를 부리고 아랫사람을 다스릴 때 억지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 기술을 의미한다.
'후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侯王得一以爲天下正)'는 대목이 바로 이 무위를 얻어 천하를 지배한다는 직접적 표현이라는 해석이다.
통상 '노자'의 대표본으로 알려진 왕필 본이 아니라 1973년 발굴된 마왕퇴 본을 저본으로 삼고, 진(秦) 대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통치술을 위한 저술이라는 대목과 이어져 있다. 또 기본적으로 '노자'를 잡가(雜家)적 작품으로 규정하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노자'의 모든 문장을 다양한 계통의 여러 고전 문장과 비교해 그 중에서 얼른 '노자'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제시한 점도 눈에 띈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