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틀러 "나도 손가락 있소"취임 1주일을 보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소탈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 스타일이 화제다. '파격행보'로 숱한 얘기를 만들어온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킬 정도로 두 사람은 업무스타일에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최 대표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나 최병렬이오"라며 직접 받는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기자의 전화를 직접 받았던 것과 같다. 측근들은 "휴대폰은 원래 직접 받는 것 아니냐"고 웃어넘긴다. 대표실 문턱을 낮춘 것도 눈에 띄는 일. 이전까지 기자들은 대부분 간담회 등 공식적인 기회가 마련돼야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 대표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기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달변을 보여준다.
최 대표는 또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물어본다. 국회 본회의에서 KBS 결산안이 부결되자 3일 기획예산처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KBS가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의 감사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직접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출퇴근 때 당직자가 엘리베이터를 미리 잡아주는 것도 사라졌다. "나도 손가락이 있다. 당신들(당직자)은 신경 쓰지 말고 일을 하라"는 취지란다.
최 대표는 자신의 소탈한 행보에 대해 "나는 폼 잡는 것을 싫어하고 인생은 생긴 대로 사는 것 아니냐"면서 "너무 거창하게 해석하지 말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권노갑, 恨품은 蘭? 2심 "무죄"후 징역선고한 1심판사에 배달
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은 2일 진승현씨 돈 수수 혐의에 대한 2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나온 직후 한 변호사에게 난 화분을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면담하기 위해 동교동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전화로 난데없이 '축 개업 권노갑'이라는 리본을 단 화분 배달을 주문했다.
'권부'(권 전 고문의 별칭)의 난을 받은 사람은 박영화 변호사. 지난 해 7월 1심 재판 때 권 전 고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던 판사다.
그는 1심 재판이 끝난 2개월 뒤 법복을 벗었다. 권 전 고문이 변호사 개업을 한지 10개월이나 된 박 변호사에게 새삼스럽게 난 화분을 보낸 이유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권 전 고문의 측근인 이훈평 의원은 4일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대로 쌓였던 감정을 다 잊기 위해서 한 것이지, 별 뜻이야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단순히 응어리진 감정을 푸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 "권 전 고문이 그 동안 쌓였던 원망과 한을, 유죄를 선고했던 판사에게 역설적으로 표시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권 전 고문은 1심 재판 당시 무죄 입증을 위해 현장 검증을 강력히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몹시 원망해왔다. 실제로 항소심에선 현장검증이 권 전 고문의 무죄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이에 대해 "난 화분은 사무실에 뒀다"며 "그러나 그(재판) 얘기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을 피했다.
정가에서는 "권 전 고문이 오죽 한이 맺혔으면 그랬겠느냐.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다"라면서 무죄확정 판결이 나오면 검찰 수사라인에 대한 '응전' 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동북아 경제 중심" 지고 "소득 2만弗 시대" 뜨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슬로건이 최근 '국민소득 2만불 시대'로 변했다. 대선 때 1순위 구호였던 '동북아 경제 중심'얘기가 취임 4개월만에 슬그머니 뒤로 빠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노 대통령은 동북아 경제 중심에 대해 대단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버린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슬로건은 바뀐 게 현실이고, 그 배경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노 대통령은 3일 이에 대해 "국민은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며 "쾌적하고 문화적인 것보다는 '2만불 시대'하니까 감이 오잖습니까"라고 설명했다. "돈 만이 비전인 것처럼 비쳐질까 봐 그 동안 2만 달러 얘기를 하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슬로건 변경이 결정된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으로 동북아 경제중심을 내세운 지 3개월이나 됐지만 국민의 '체감지수'는 너무 낮았던 게 사실. 때문에 재계와 언론계 등에서 주장해 왔던 '2만불 시대'를 수용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임기 내에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인 '1만5,000달러'를 내 걸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발음이 어렵고 길어서 폐기됐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 안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불 달성' 구호에 익숙한 40대 이상 세대에게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자평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전경련이 2월 총회에서 대통령 직속기구로 '2만 달러 추진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는데 왜 이제야 하느냐"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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