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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청와대 비서관 애끊는 思婦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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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청와대 비서관 애끊는 思婦曲

입력
2003.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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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중앙길병원 영안실. 청와대 인사혁신비서관 김용석(54)씨는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다시 부인 안순분(50)씨의 영정에 고정되는 순간 김씨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흘렀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키고, 임종도 못한 채 이렇게 떠나 보내다니…."1975년 가톨릭 학생회 사건에 연루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뒤 80년 연세대 법정대에 입학했던 김씨는 81년 인천의 한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안씨를 만났다. 안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방배동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노조가 해체된 뒤 조합원들이 출자해 구로구 가리봉동 5거리에 만든 '공단서점'을 관리하면서 김씨와 자주 접하게 됐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가와 노동자로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안씨는 당시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절차를 끝낸 상태였지만 김씨의 구애에 결혼을 승낙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어려웠다. 80년대 후반에야 부부는 인천시 부평구 부평3동 부평공원묘지 주변 13평짜리 다세대주택을 전세 2,500만원에 겨우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늘 노동운동과 재야 활동으로 바빴다. 3명의 자녀를 둔 안씨는 건강을 돌볼 틈도 없이 생활용품 방문판매 등으로 바쁘게 생활해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남편은 올 2월 청와대에 입성했다. 늘 아내에게 미안했던 김씨는 안씨에게 떳떳한 남편으로 다가설 수 있었고, 지난주에는 결혼 후 처음으로 유성온천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2일 새벽 5시 집을 나선 김씨가 청와대 전체 직원회의에 참석하는 사이 아내 안씨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을 거뒀고 김씨는 아내의 임종도 못한 남편이 돼버렸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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