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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산별투쟁 어디로

입력
2003.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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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은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이를 계기로 바람직한 노사모델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게 된 것은 중요한 변화다. 그러나 새로운 모델로 제시된 네덜란드식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인상 요구 자제와 경영참여 보장의 대타협은 쉽지 않다. 임금 억제와 경영권 침해라는 부정적 측면이 더 돋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정한 모델이 바로 이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사실 요즘의 갈등은 노사문제라기보다 노정문제다. 정책과 제도 개선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개별 노조가 단위 사업장을 넘어 대정부협상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협상 자체가 어렵고, 통상 6월이면 마무리되던 임단협이 여름까지 계속되고 있다. 분규사업장 중 정책문제가 이슈인 곳이 60% 이상이라는 통계가 있다.

상황변화의 주요인은 단위노조의 산별 전환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다. 노동계는 조직 확대와 정치적 영향력 강화, 기업간 격차 해소를 위해 산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자대표와의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과 근로조건,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별교섭과 산별교섭이 병행돼 아직 큰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대규모 총파업도 가능해 산별노조는 기업에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해 노사분규도 절반 이상을 산별노조가 주도했다. 연초에 경영자총협회가 100대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2.3%가 노사관계가 더 불안해질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그 요인으로 법·제도 개선요구, 비정규직문제에 이어 산별노조 건설 및 산별교섭 추진을 꼽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노동계는 산별 전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회민주당(한국노총)이나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를 위해 만든 정당이다. 노동계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몇 명만 배출되더라도 수십번 파업하는 것보다 더 영향력이 클 수 있다. 이미 전체 노조원의 40% 정도가 산별 조합원일 만큼 산별 추진은 노동계의 대세다. 노동부의 올해 업무계획에도 산별노조 활성화가 들어 있다.

그러나 재계와 일부 학자들은 산별노조가 궁극적으로 경제의 의사결정시스템을 바꾸고 시장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사관계의 틀이 탈집중화, 유연화로 바뀌고 정치적 힘을 갖추는 것보다 일자리 창출로 초점이 옮겨진 해외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산별 추진은 재계를 자극하는 반작용도 있다. 2일 열린 전경련 간담회는 기업 전체에 영향을 주는 요구사안에 대해 가이드라인 제시등 통일된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경총도 연초의 단체협약지침에서 산별노조의 교섭요구에 강력히 반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산별노조의 폐해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독일에서는 산별교섭의 결과가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영업실적이 나빠도 이에 맞춰 임금을 올리다 보니 고용 감소라는 부작용이 빚어져 지금은 산별노조를 탈퇴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상급 단체와 단위노조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는 상부조직을 맥빠지게 했다. 민주노총이 철도파업 진압에 반발, 임단협투쟁을 대정부투쟁으로 전환했지만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노조는 부분파업으로 돌아섰다. 현대차노조의 산별 전환도 부결됐다. 한국노총은 정기국회에 맞춰 경제특구법과 비정규직문제, 최저임금제 개선 등 정책투쟁을 벌인다고 한다. 단위노조가 얼마나 따라줄지는 알 수 없다.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을 임단협투쟁에 포함시킬 경우 적극적 지지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발전에 월반은 없다. 산별운동도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거쳐야 할 과정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투적 노사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국민의 공감도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산별투쟁은 많은 문제를 빚을 수 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 시작한 정부는 각각의 산별투쟁이 사회공익을 증진하는 차원인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행동인지 구별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

임 철 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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