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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파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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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파리 2

입력
2003.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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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술집 화장실에서 겪은 일이다. 웬 파리 한 마리가 마침 내가 볼 일을 보고 있는 소변기 중앙에 떡 하니 앉아있는 것이었다. 오호, 너 잘 걸렸다.술에 취하긴 했지만 코 앞의 파리 하나 못 맞출 내가 아니었다. 예비군 훈련에서 몇 백m 떨어진 표적도 맞추는 몸이라 이거야. 그런데 이 놈의 파리가 강한 물 대포를 맞고도 끄떡하지 않았다. 어라? 죽은 놈인가?

이번엔 그 파리를 아래로 떨구기 위해 집중적으로 물줄기를 쏘았지만 이 놈의 파리는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군.

자리로 돌아와 맥주 몇 잔을 더 마시고 다시 화장실에 가보았더니 그 질긴 파리가 아직도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니 그도 역시 한 마리의 파리를 맞추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목표만 보면 맞추고 싶어하는 수컷들의 속성을 겨냥하여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넣은 이름 모를 디자이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잘 그린 파리 하나 열 표어 안 부럽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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