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숭은 생각하였다. 농민 속으로 가자.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몸만 가지고 가서 가장 가난한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입는 입고, 그리고 사는 집에서 살면서, 농민의 심부름을 하여 주자.> '흙'의 주인공의 갸륵한 결심은 이어진다. <편지도 대신 써 주고, 주재소, 면소에도 다녀 그러면서 글도 가르치고, 소비조합도 만들어 뒷간, 부엌 소제도 하여 이렇게 일생을 바치자.> 이광수의 '흙'은 핍박과 빈곤에 찌든 1930년대의 농촌을 이상향으로 바꾸려는 귀농의식과 '브나로드' 운동을 부각시킨 계몽소설이다.■ 3·1 독립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 정교해졌다. 공산주의 사상도 한줄기 소나기처럼 지나갈 그 무렵, 공산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지식층은 브나로드 운동이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한다. 브나로드(vnarod)는 '민중 속으로'를 뜻하는 러시아어다. 1873∼74년 러시아의 2,500여 진취적 젊은 지식인들은 이 슬로건 아래 교사와 점원, 노동자가 되어 농민에게 혁명가 나로드니키의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주동자들은 검거되어 '193인 재판'에 처해졌다. 편지도> 허숭은>
■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농촌봉사활동 현장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정 총장은 2일 충남 천안의 농활현장을 방문했다. 총장의 참여는 이 대학에서는 처음이며 타 대학에서도 흔치 않다. 그는 평소 학생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이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학생처의 참여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울대생 1,500여명은 지난달 27일부터 충남 일대에서 농부들과 밭을 매고 야채를 가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민중 속으로' 들어가자던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급진적 혁명사상은 계몽사상으로 크게 바뀌어 한국 땅에 상륙했다. 다시 해방 후에는 낭만적 성격이 가미된 학생봉사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혁명'은 '봉사'로 바뀌고 축소되었지만, 이를 역사진화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우리 농촌도 바뀌었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 이전까지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농가인구는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전체의 8.3%밖에 되지 않는다. 농활의 열기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여름방학 한철 겪는 땀의 체험은 소중하다. 도서관에서 책과 머리로서가 아니라, 땅에서 근육과 가슴으로 느끼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는 신선하고 신성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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