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삼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7월4일생'은 론 코빅이라는 사내가 쓴 같은 제목의 자전 소설에 바탕을 두었다. 원작자 코빅은 영화 주인공 론처럼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이 생일이고, 베트남 전장(戰場)에서 해병대원으로 복무하다 척추를 다쳐 귀향한 뒤 반전 운동에 뛰어들었다.스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의 대의로 내세웠던 '자유의 수호'가 얼마나 허망한 구호였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론이 베트남에 가서 한 일이라고는 공포 속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오발로 동료 병사를 죽인 것뿐이다. 척추에 총상을 입고 허리 아래를 못 쓰게 돼 미국으로 후송된 론이 겪는 마음의 요동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스톤 감독은 냉정하다 못해 비정하다. 자신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됐는데, 조국에 돌아와 보니 좋아했던 여자친구와 동생까지도 반전주의자가 돼있다. 한편에선 정치인들이 '자유의 수호'를 위한 확전을 끊임없이 되뇐다. 누구의 자유를 위해?
군인 병원에 입원해 노상 신경질만 내는 론에게 흑인 남자 간호사가 내뱉는 말이 인상적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미국에도 지천이야. 굶어 죽는 사람들, 아파도 병원 갈 수 없는 사람들. 네가 그 사람들을 알아?" 미국 정치인들이 베트남 인민의 자유를 생각하는 것 만큼 제 나라의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미국과 세계는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됐을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와 달리 이라크에서는 이겼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베트남에서처럼 이라크에서도 어린이들을 포함해 많은 민간인이 죽었고, 불구가 된 미군 병사도 여럿이고, 미국엔 여전히 불행한 사람들이 지천이다. 항공모함 링컨호에서 우아하게 승전 선언을 하는 부시의 마음 속에 그 사람들이 들어갈 자리가 있었을까?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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