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1992년 수교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중국을 방문했고 그 때마다 나름대로 성과를 기대했다. 회고해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당시에는 상당한 성과를 얻은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 퇴색되는 경우도 있었다.물론 국가간의 해묵은 현안들이 최고지도자의 한 두 차례 방문으로 속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한·중관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정치·경제·안보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고 복잡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이번 노 대통령의 방중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대내외적 현실은 어느 하나도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사안들은 국가 차원의 지혜와 순발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최고 지도자의 행보 하나 하나가 중요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점에서 노 대통령의 방중은 지난 5월의 방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는 노 대통령의 방중이 좀더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 준비를 거드는 차원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사안의 논의와 공감대 형성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물론 초면에 껄끄러운 안보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담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중국이 '한반도 평화 유지'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다만 주의할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북한 핵 문제와 북한의 입장을 거론하기보다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와 직결된 사안 및 각 당사국간의 협력 필요성을 거론하고 그 일환으로 중국의 동조를 구하는 선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최근 중국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북미간 입장 조율에 매우 적극적이며, 그 연장선에서 우리와 논의를 진행하고자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는만큼 중국도 우리의 특정 역할을 주문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 또한 필요하다.
둘째, 수교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양국간 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 유지하기 위한 실무차원의 다각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경제, 과학기술, 사회문화 등을 중심으로 한 한·중 교류는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따라서 교류의 양적 확대 및 질적 발전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차원에서 호혜요소의 극대화, 갈등요인의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분야별 협의가 요구된다. 특히 한·중 경제교류는 우리에게 기회와 위기의 가능성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제관련 사안에 대한 전략적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셋째, 미래 지향적 차원에서 21세기 한·중관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명시적인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즉 모호한 '건설적 동반자관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양국관계의 궁극적인 발전방향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 단계의 정치·안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관계발전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쌍방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중관계는 그동안 경제적 호혜, 정치적 선린의 단계를 거쳐 안보적 협력의 단계에 진입했으며 현재는 그간의 발전 과정에 대한 객관적 점검과 상호보완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촉진 요인으로써 양국관계의 미래상을 그려내야 할 시점이다. 바로 이 점은 노 대통령의 방중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요인이기도하다. 부디 새롭게 출범한 양국 지도자간의 만남이 한반도의 평화적 기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문 흥 호 한양대 교수· 중국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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