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직장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하루를 삼각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올해 나이 서른의 주부이자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입니다.1인 3역으로 살다보니 항상 시간에 허덕이게 됩니다. 그래서 10분 이상 시간이 절약되겠다고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타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저의 주요 이동코스에는 서울 시내에서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소문난 한남대교 구간이 포함돼 있습니다. 노련한 기사님을 만나면 이 구간을 10분만에 통과하지만 초보 기사님을 만나면 집으로 가는 28번 버스가 내가 탄 택시를 추월하는 장면을 구경해야 합니다. 그럴 때면 택시비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답니다.
그 날 역시 택시를 타고 한남동에서 서초동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기사님은 강남역에서 양재역 쪽으로 직진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대 지리를 잘 아는 터라 "기사님, 우회전을 하면 빠를 텐데요"라고 했더니 기사님은 급하게 핸들을 꺾었습니다.
그러더니 기사님은 "아, 내가 길을 헷갈렸네요. 손님이 교대역으로 가는 걸로 착각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돌아가려고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하는 겁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실수를 털어놓는 기사님에게서 신선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기사님은 우정사업본부 과장을 지내다 1년 전 정년 퇴직하고 택시 기사로 나섰다고 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택시 운전대를 잡겠다니 말리는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을 별 것 아닌 듯이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님은 자기 실수라면서 택시요금의 끝자리 100원 단위를 깎아주었습니다. 기사님의 인생의 여유가 느껴지더군요.
40대 중반만 넘으면 직장에서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순, 일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시는 용기와 열린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지난 세월을 현명하게 살아온 지혜와 가치관을 후세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합니다. 편히 쉬어야 할 나이에 활동을 종용하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도 들지만 가치관이 흔들리는 우리 사회에 중심으로 우뚝 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jjk0077@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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