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50주년 특집을 마무리하면서 한미동맹 현황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자인 이철기(李鐵基)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주한미군 재배치가 해·공군을 강화하고 지상군을 소수 정예화하려는 우리 군의 발전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효(金泰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 군사동맹을 포괄적이고도 역동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5월 한미 정상 공동성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교수는 촛불 시위를 계기로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 구상을 앞당기는 바람에 북한 재래식 무기의 후방 배치와 맞바꿀 수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카드를 상실했다고 강조했다. 대담은 6월 30일 본사에서 진행됐다.
이 철 기 (46) 동국대 정치학 박사, 동국대 교수 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동북아 지역 안보 전공
김 태 효 (36) 미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신아세아 연구소 연구실장, 한미동맹·미일동맹 전공
한미동맹 50년의 평가
김태효 교수=한국전쟁을 끝내면서 출범한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그간 동맹은 3차례 전환점을 맞았다.
북한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던 1970년대 미국의 개입정책이 후퇴하면서 남한이 독자방위론을 주창했을 때가 첫 전환점이었다. 두 번째는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북한 핵 위기이다. 한국은 냉전 후에도 한미,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뼈아픈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최근의 전환점은 지난해 10월 북한의 농축 우라늄 개발 프로그램이 노출된 직후 진행됐던 여중생 사망 사건 촛불 시위이다. 반미 정서와 한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함께 작용하면서 한국의 대미 불신, 미국의 대한 의구심이 동시에 커졌다.
이철기 교수=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열세였을 때 한미동맹이 결정적인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을 당시의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주한미군이 있어야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탓에 우리는 동맹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비판하면 반미주의자로 덧칠하는 세태는 개선해야 한다.
주한미군 재배치
김 교수=한국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미군은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 독일 등에서 재배치작업을 시작했다. 미국은 당초 북한 핵 문제 등 긴장 요인이 많아 한국과 협의하면서 이 문제를 추진하려 했으나 여중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속도를 높였다.
한국 사회가 미군 철수론과 축소론를 거론할 때 미국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밀어붙이면 이전 비용 등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미군이 후방 배치 후 북한을 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무력 사용 문제는 미중 관계 등 좀더 심대한 요인들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여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교수=아시아 주둔 미군의 개편은 중국에 대한 견제·봉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남쪽으로 이동시킬 필요성이 커졌다. 해·공군 강화 전략에 따라 오산 공군기지가 확대되고 있는데 미국은 해군기지를 한국에 둘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 감축
이 교수=주한미군 규모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지상군을 줄이고 해·공군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넌―워너 수정안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먼저 7,000명을 감축하는 것으로 돼 있다.
미국은 2006년까지 주한미군 전력 강화를 위해 110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2006년까지 상당한 정도의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주한미군 재편이 한국군 개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군이 지상전력을, 미군이 해·공군력과 정보력을 담당해온 현실에서 미군이 향후 해·공군을 강화할 때 한국의 해·공군이 증강될 공간은 작아질 것이다. 또 미국은 우리를 향해 해·공군첨단 무기 구입 압력을 높일 것이고 이지스함 구매 등을 통해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을 강요할 수 있다. 이는 동북아의 긴장을 높일 것이다.
김 교수=미 2사단의 절반 정도는 축소될 것으로 본다. 일본보다는 호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반미 정서
이 교수=지난해 촛불 시위를 반미로 매도하는 것이 안타깝다. 시위는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의사 표시였다.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미국이 세계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북아 지역 안보에는 유익하다고 답했다. 이는 50년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객관적으로 미국을 바라보아야 한다.
김 교수=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라면, 특히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라면 반미 정서는 운명과도 같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국익 때문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이 교수=을사조약 이래로 100년 동안 우리가 완전한 군 통수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환수가 시기상조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김 교수=영관급 장교일 때는 당장 전시 작전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장군으로 승진하면 태도를 바꾸는 게 우리 군의 현실이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5∼10년 안에 작전권을 돌려준다 해도 우리의 능력이 뒷받침될지 의문이다. 지금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
이 교수=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주한미군 장래 등에 대해 뚜렷한 청사진이나 목표가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초기에 당당한 한미관계를 내세웠다가 180도 전환해서 미국의 전략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흔들리는 데에는 우리 사회의 잘못도 있다. 노 대통령 방미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라고 얼마나 닦달했었는가.
김 교수=5월 한미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은 현 동맹관계를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군사동맹을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 글로벌 이슈로까지 확장시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 여론 수렴 절차가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임박해서 미국과의 극단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급히 중장기 계획이 나온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최악의 상황인 핵 위기로 인한 대북 전면전을 강조하는 쪽에서만 동맹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 테러, 위조 지폐, 불법 무기 수출 등을 공동 관리하는 등 포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북한 핵 문제
김 교수=핵 문제는 한미동맹의 방향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북한 핵 문제를 이해하려면 북한, 한국, 미국의 딜레마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핵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이 카드를 버릴 경우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하고, 개혁개방을 해야 하는데 이는 김정일 정권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북한 핵이 투명한 절차에 따라 해결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식량을 얼마 주고 달래서 북한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한국의 딜레마는 강압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포위할 수도 없고, 유화적 방식의 해결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한미공조다. 미국과 한국은 대북 정책에서 적절히 역할 분담을 하고 강온 전략을 함께 구사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각에서 북한에 접근할 수 없다는 단호함을 북한에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의 딜레마는 이라크와 같은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교수=주한미군의 존재가 전쟁을 억지하는 측면과 함께 이 억지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핵 무장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한반도의 평화보장자로 바뀌어야 한다.
한미동맹 발전 방향
이 교수=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평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수 십년간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 먼저 동맹관계를 수직적으로 만들었던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전시 작통권을 환수하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 또한 주한미군이 없는 한국의 안보도 이제부터 구상해 보아야 한다.
김 교수=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전략과 21세기 한국 외교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면 한미관계를 조정해야겠지만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공통점이 너무 많다. 대량살상무기에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다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면이 있지만 근본적인 미국의 대외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합치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철수한다든지,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냉전이 존속하는 한 한미관계는 철저하게 군사적 억지력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촛불 시위로 미국이 재배치 문제를 서두르는 바람에 당초 북한 재래식 무기 후방 배치와 함께 추진하려던 주한미군 재조정이 성급하게 이뤄지게 됐다. 이는 우리의 대북 협상 지렛대 하나가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정리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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