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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66>소설가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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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66>소설가 이청준

입력
200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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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됐는가."글을 써 오면서 주위에서 자주 듣는 물음이다. 그 물음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 처음 동기와 함께 지금도 계속 소설의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곤 한다. "나는 왜 계속 소설을 써야 하는가?"

그에 대해 내가 자주 내세우는 동기로 우선 내 태생이 시골내기임을 들곤 한다.

6·25 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봄 4월 초순 나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처음으로 고향 마을을 떠나 먼 도시의 친척 누님 댁으로 더부살이 길을 나섰다.

신세를 지러 가는 처지에 변변한 선물거리를 마련할 수 없어 전날 한나절 마을 앞 개펄에서 어머니와 함께 잡은 바닷게 자루를 짊어지고서였다. 그런데 열 시간 가까운 버스길에 흔들리고 바스라져 누님 집까지 도착하고 보니 자루 속의 게들은 이미 심하게 상해 있었다. 그 게자루를 누님은 코를 막으며 대문 앞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그때의 그 부끄럽고 무참한 심사라니! 나는 나 자신이 바로 그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내 졸작 '키 작은 자유인' 중 한 부분을 요약한 주인공의 이 같은 술회는 나 자신의 체험 그대로인 셈이다. 뿐더러 나는 그로부터 남루하고 부끄러운 시골뜨기 자신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유족하고 자랑스런 도회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했다. 그 시절 시골에서 도회 학교 진학 목적이었던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내게는 그렇듯 떳떳한 도회살이 끼어들기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도회의 높고 단단한 벽은 쉽사리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도회살이는 내게 늘 낯설고 서툴었으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주눅들게 하였다. 나는 언제까지나 도회인다운 익숙함이나 이룸, 거둠이 없는 얼치기 떠돌이 꼴일 뿐이었다. 나는 자연히 나를 끼워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실망과 원망을 삭이고 무력한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자기 위안의 길이 필요했고, 그것이 나를 배제한 현상의 질서보다 더 나은 다른 세상을 내 나름대로 꿈꾸는 격인 소설 쓰기의 욕망을 싹트게 한 셈이었다.

그런 내면의 동기에서 시작된 새 세상 꿈꾸기 '소설 질'은 현상 질서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그 부조리를 개선하고 싶은 희망을 앞세웠음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 역시 내 세상 끼어들기의 한 방식과 노력에 불과했던 탓인지 모르지만, 한동안 그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는 어느덧 자신의 소진감과 함께 그 나은 세계에 대한 꿈과 희망에서조차 심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당엔 버려두고 떠나온 내 남루한 시골살이의 기억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를테면 내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회귀 혹은 확인의 과정이었고, 그로부터 나는 새 귀향길을 닦는 심정으로 옛 시골 고향길을 다시 찾아다니며 도회에서 소진된 삶의 피로를 덜고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조금씩 회복해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 과정이 내 소설의 다음 번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회의 삶에 비해 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감성적(정의적)이며 개별적, 정적, 자족적, 근원적 생존 질서의 측면이 강해 보이는 시골살이의 특성이나, 그에 비해 보다 인위적이고 이성적(공리적)이며 사회적, 동적, 의존적, 현상적 제도의 측면이 앞서 보이는 도회살이 행태는 어느 한쪽이 보다 본질적 속성이기보다는 양자가 우리 삶의 없어서는 안될 보완적 양가성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 도회에서는 내 근원에 대한 결핍감에 시달리고 시골에서는 다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도회살이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내 정신의 균형과 조화를 얻어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며 그 도회와 시골 사이를 반복해 오가고 있었다.

도회와 고향 사이를 되풀이 오간 떠남과 되돌아옴의 반복 과정은 그러니까 그 양면성을 온전히 조화시켜 보려는 내 소설의 바른 길 찾기이기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지금껏 소설을 써온 또 다른 절실한 연유일 것이다. 소설이란 다름아닌 우리 삶 베끼기(모방)일 뿐더러, 기왕지사 소설 질로 삶의 길을 나선 내게는 그 삶의 이룸과 성패가 내 소설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찾았는가. 아직도 어두운 길 위의 헤매임 속에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음이 반증이거니와 그건 물론 아니다.

어두운 밤 산길을 멀리도 헤매온 느낌이다. 그러고서도 아직 제대로 밝은 길을 찾지 못해 계속 헤매고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이는 한달 여 전 40년 가까운 내 소설 질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문우들 앞에 털어놓은 소회다. '밤 산길'은 어둡고 장애 많은 우리 삶과 소설의 길을 내가 자주 비유해온 말인 바, 최첨단 정보의 대량유통 시대에 들어선 작금의 우리 삶은 그 숨막히는 속도와 가치 변동 현상 속에 오히려 더욱 혼란을 겪고 있는 꼴(정보의 바다에 빠짐!)이다. 그리고 그 삶을 베끼는 소설도 계속 그 어둠 속 산길을 헤매는 답답한 꼴을 보일 수밖에 없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소설은 그 어둠과 헤매임 속에서도 제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지난한 길 찾기를 계속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일깨워 가며 일어서 나아가지 않으면 삶도 소설도 끝장일 터이므로. 내가 소설의 길을 계속해 가야 하는 마지막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그 밤 산길에서 다른 사람을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독행자(獨行者) 처지더라도.

하지만 어두운 산길을 헤매는 독행자 꼴이 어찌 소설의 길을 가는 나 한 사람의 처지일 뿐이랴.

언젠가 나는 한 프랑스 시인 친구에게 그런 내 소설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를 털어놓은 일이 있었다. 도대체 이 독행 밤 산길 헤매기 식의 내 소설 질이란 게 무엇인가. 내 이웃들에게 그것이 무슨 뜻을 지닐 수 있는가?

그 친구는 내게 충고했다. "그 어두운 밤 산길은 너 혼자서만 가고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네 뒤에도 그런 독행자가 어둠 속을 외롭게 가고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네가 가고 있는 밤 산 근처에도 다른 수많은 산이 있고, 그 산길에도 너 같은 독행자의 영혼들이 제각기 어둠과 두려움, 절망감 속을 헤매고 있을 수 있다. 그런 독행자들은 상상보다 많을 수 있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 독행자의 처지일 수 있다. 그들 중 누가 네 발자국 흔적이라도 만난다면 그는 자기 혼자 어두운 산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반갑고 큰 위안을 얻겠는가. 이웃 산들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제 불안한 길을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네 독행자의 소식은, 그것으로 지난한 우리 삶의 길에 대한 진상을 일깨워주는 일은 그 지치고 불안한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릇이겠는가. 네 소설은 적어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그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내가 아직도 소설 일을 놓지 못하는 또 다른 구실일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그런 헤매임 끝에 근자 들어 어떤 어슴푸레한 길 표시 빛줄기를 만나게 된 탓도 있을 듯싶다. 앞서 말했듯 몇 년 전부터 지난 시절의 작품을 한 데 묶어내는 작업 중에 깨달은 일로, 지금까지 내 소설은 꿈(이념)과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와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정신태의 한계 안에 머물러 온 느낌이었다. 그 현실과 역사의 유전적 침전물로서의 태생적 정서가 담겨 있을 넋(종교성과 맞먹을 우리 신화와 신화적 서사)의 차원이 결여되어 있었다. 내 소설이 여태껏 긴 세월 어둠 속 길을 헤매 온 것은 그렇듯 우리가 누구인지 본 모습을 결정짓는 첫 요소라 할 우리 신화와 신화성에 소홀한 탓이 아니었던지. 근자 들어 새로운 시작의 시도로 우리 무속의 현세적 덕목(삶의 구원)을 주제로 한 졸작 소설 '신화를 삼킨 섬'을 쓴 것은 그런 뒤늦은 깨달음 덕이었다고 할까. 문이 보이면 착각일망정 열어보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 연보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5년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 등단 1966년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99년∼현재 순천대 문예창작과 석좌교수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가면의 꿈' '이어도' '자서전들 쓰십시다' '예언자' '백조의 춤' '남도 사람' '선학동 나그네' '살아 있는 늪' '매잡이'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시간의 문'

'제3의 현장' '비화밀교' '벌레 이야기' '새가 운들' '가해자의 얼굴' '목수의 집', 장편소설 '조율사' '당신들의 천국' '이제, 우리들의 잔을' '춤추는 사제'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자유의 문' '인간인' '흰옷'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산문집 '작가의 작은 손' '말없음표의 속말들' '야윈 젖가슴', 동화 '바람이의 비밀' '뻐꾸기와 오리나무'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판소리동화 '놀부는 선생이 많다' '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춘향이를 누가 말려' '옹고집이 기가 막혀' 등 동인문학상(1967) 한국일보문학상(1975) 이상문학상(1978) 중앙문예대상(1979) 대한민국문학상(1986) 이산문학상(1990) 대산문학상(1994) 21세기문학상(1998)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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