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8년 7월3일, 석유 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페르샤만 호르무즈 해협을 순항하던 미군함 빈센호가 지대공 미사일 두 발을 쏘아 이란 민간 항공기 에어버스 A300을 격추시켰다. 이란 민항기는 아라비아만의 토후국 두바이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던 중이었다. 격추된 민항기의 탑승자 290명은 전원 사망했다. 미군 당국은 빈센호가 민간 및 군사 무선 통신을 통해 여덟 차례나 에어버스와 교신을 시도했으나 대답이 없어서 이를 이란 F-14 제트 전투기로 오인하고 미사일을 쏘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은밀히 지원하고 있던 터여서, 이란 측은 이 사건을 미국의 의도적 도발로 해석했다.이란-이라크 전쟁은 두 나라 국경 지역에 있는 샤트알아랍 수로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1980년 9월에 발발해 8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당시엔 국제 저널리즘이 이 전쟁을 '걸프 전쟁' 또는 '페르샤만 전쟁'으로 불렀으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촉발돼 이듬해 벌어진 연합군의 대(對)이라크 전쟁을 걸프전쟁으로 부르는 관행이 확립됨에 따라 1980년대의 전쟁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라크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수로 영유권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넘어서, 집권한 지 얼마 안된 사담 후세인의 정치·군사적 야망이 이란에 수립된 혁명적 이슬람공화국에 대한 서방측의 불안과 맞아떨어진 데서 촉발됐다.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정권이 이란에서 붕괴하자, 미국은 이란을 서남아시아 지역의 가장 위험한 적성 국가로 판단하고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군비 확장과 전쟁 수행을 여러 경로로 지원했다. 후세인 정권을 키운 것도 미국이었고, 죽인 것도 미국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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