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제1라디오 채널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례 주례연설을 신설할 것을 밝히자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청와대는 대통령이 주요 국정 현안과 정부정책에 대해 매주 한 차례 10분 가량 직접 설명한다는 계획이다. 참여정부답게 국민에게 이해와 협조를 호소하며 공감대를 넓혀가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은 '내년 총선용이 아니냐'는 해석을 깔면서 짙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지난달 30일 일반 기사, 사설, 해설 기사 로 집중보도하면서 '꼭 필요한가', '공영방송 통해 비판신문 맞대응' 식의 제목을 달기도 했다.
오히려 야당 대표의 자세가 훨씬 유연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나쁠 것이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예를 들어 "페어 챈스가 중요하다"며 야당에게 반론권을 보장해 주길 요구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정부정책의 홍보 활동에 시비를 걸기 보다는 정책 쟁점에 대해 반론할 기회를 정당하게 얻으려는 것은 고단수 접근이다.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은 1933년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시작한 라디오 국정연설이 원조다. 벽난로 옆에서 연설했다 하여 노변정담(fireside chat)으로 불린 이 연설은 당시 미국 대공황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여론을 주도했다. 상투적인 '국민 여러분'이 아니라 '마이 프랜드'로 시작한 연설은 엄숙한 훈계가 아니라 마치 사랑방에서 국민과 정담을 나누듯 가식 없이 이뤄졌다.
노변정담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솔직하게 국민에 가까이 다가간 덕택이었다. 노변정담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12년간 재임 중 30여 차례 실시됐고, 이후 68년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토요일 주례 연설로 정례화하여 지금에 이른다.
우리의 경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라디오 국정연설을 시도했으나 흐지부지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6개월에 한 번씩 하려했지만 두어 차례 했을 뿐이다.
대통령이 국정과제와 정부정책에 대해 직접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을 정략적 시각만으로 몰아세우는 건 옳지 않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도 당시 언론 비판과 야당의 견제 때문에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물론 주례 연설이 대통령만의 연설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야당의 반론 기회를 인정함으로써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여긴다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정부의견만 아니라 야당의 비판과 다른 의견을 함께 들으면서 정부 정책과 현안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나 방송사는 야당의 반론 기회를 마다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반론기회의 경우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소수 정당에게도 폭 넓게 주어져야 한다. 물론 반론권 보장 수준과 진행 방식을 놓고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 참에 아예 정책반론방송제도를 도입하거나 정당들이 참여하는 정규 라운드테이블 정치토론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도 정치발전 등을 위해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나아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처럼 평상시의 정당방송이나 정책반론방송과 선거시의 토론방송 등을 전담, 규제하는 정당정치방송위원회 같은 기구를 상설화하는 것은 어떤가. 이런 관행을 잘 정착시켜 나가면 늘 국민의 눈총을 받는 후진적인 우리 정치행태도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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