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대통령들은 너무 권위주의적이어서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너무 권위가 없어서 문제다. 물론 민주 발전을 위해 권위보다는 '참여와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현 정부도 그런 꾸밈말로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대통령의 권위는 모순되지 않는다. 아니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권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대화와 타협은 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권위를 가져야 한다. 권위는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마음으로부터 존중할 때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그만한 능력과 식견,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일관된 철학과 정책, 정권 장악력, 그리고 품격 있는 언행이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집권세력의 우두머리이고 국민을 이끄는 선도자이다. 민주적 대통령은 이를 민주적으로 수행하고, 독재적 대통령은 이를 독재적인 방법으로 해 나갈 뿐이다. 민주주의를 위계와 질서 없는 난상토론이나 이권 투쟁으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을 무서워하되 정부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기강을 확보해야 한다.
일선 검사들과 공개 토론을 벌이고 여기저기 관공서를 찾아다니면서 특강을 하는 '열려 있고 친근한 대통령'만으로는 권위가 서지 않는다. 대통령은 하급자에게 '연설'을 하고 '지시'를 해야 한다. 그래야 기강이 서고 권위가 선다.
국민과 정부 구성원 모두에게 대통령은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확실한 미래 전망을 제시하거나 적어도 최고 권위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존경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최소한 외경심이나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 이는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얕잡아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대통령과 나라 모두를 위해서 그렇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은 절제, 판단력, 의지, 그리고 단호함 같은 덕목을 지녀야 한다. 지금 우리 대통령이 얼마나 이런 덕목들을 지니고 있을까?
지금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얕잡아보고 있다. 조롱투도 난무한다. 이는 기득권층이 자기 계급에 미달하는 '서민' 대통령을 배척하는 이기심과 시기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주류 보수 언론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원인을 대통령 자신이 제공하기도 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대통령은 국가 원수나 국민의 선도자라기보다는 비밀결사단원이나 야당 국회의원 같이 행동하고 있다.
집권세력 안에서 얼마나 대통령의 권력을 확보했는지도 의심스럽다. 혹시 세칭 386세대나 다른 지지 운동 세력의 등에 업혀서 대통령의 입지를 충분히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집권세력 안에서 과감한 숙청을 단행하여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확보해야 한다. 필요하면 '토사구팽'도 해야 한다. 아니, 토사구팽은 어찌 보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집권 운동과 나라 통치는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입에 오르는 대통령의 언행도 역시 문제다. 문제가 되는 지나친 감정 표출이나 절제되지 않은 언어는 '진솔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것이다. 토론하고 논쟁하는 결사 당원으로서는 몰라도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도 필요하면,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감정을 터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때와 장소, 그리고 빈도가 문제다. 필요하면 눈물도 보이라. 그러나 지금처럼 자주는 안 된다. 결정적인 한 방울의 눈물은 세상을 얻어주지만, 잦은 눈물은 불신만 키운다.
우리 사회의 혼란은 민주 발전 과정의 고통이다. 이 고통을 순조로이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권위를 세워야 한다. 권위주의와 권위가 다르다는 점을 대통령 뿐 아니라 모두가 명심해야 할 때이다.
김 영 명 한림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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