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활성화를 위해 약 37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을 끌어들여라.'시중 부동자금의 규모와 생산적 자금으로의 전환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재계와 연구기관은 넘쳐 나는 부동자금을 기업 설비투자 등 생산적 부문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통한 기금 조성을 적극 건의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5년 만에 처음 편성한 '균형재정' 기조를 깨뜨리기가 부담스러운데다, 경기 하강기에는 돈을 끌어 모아도 쓸 곳이 없다는 현실론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투기성 부동자금만 50조∼100조원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만기 6개월 미만 금융권(은행·투신·종금·은행신탁) 수신은 5월말 현재 전체 수신의 47.4%인 367조9,000억원에 달한다. 2000년 말 276조원(42.4%)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만기 6개월 미만 단기 수신을 모두 부동자금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최운열 금융통화위원은 "단기 금융상품 중에는 기업의 운영자금과 설비투자 자금도 상당한 만큼, 투기성 부동자금은 50조∼100조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도 "어느 나라나 단기 예금은 있기 마련이고, 금융부문이 발전하면서 수시 입출금식 상품을 많이 개발하기 때문에 최근 만기 6개월 미만 예금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부동자금 규모가 계속 늘고 있고 단기 수익률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채 발행 통한 자금 흡수 논란
재계는 금융시장의 극심한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는 단기성 부동자금이 기업으로 유입돼 설비투자로 연결되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길승 전경련 회장은 1일 국채 발행을 통해 시중의 부동자금을 흡수, '경제활성화기금'(가칭)을 조성한 뒤 정보기술(IT) 투자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기 조절용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단기 부동자금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 생산적인 부문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고, 국책·민간 연구기관장들도 "부동자금 흡수를 위해 국채 발행규모를 추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정부 역시 장기 국채 발행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고 이를 중소기업 지원 등 생산 부문으로 돌리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균형재정 및 재정건전성 원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철휘 재경부 국고국장은 "경기가 나쁠 때는 부동자금을 끌어 모아도 쓸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국채 발행을 통해 기금을 조성할 경우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변양호 국장은 "부동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건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증시 수요기반 확충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우량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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