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애(강원 양양군)한적한 포구였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동해안의 명소로 급부상했다. 단 2개였던 포구의 여관은 이제 10여개로 늘었고, 마을 전체가 민박촌이 됐다. 포장마차 수준에 불과했던 횟집촌도 제법 고급화하고 수도 많이 늘었다.
남애는 바다가 가진 정취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고밀도 집적형' 바닷가이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너른 백사장만 3곳이다. 주민들의 전복 양식장으로 사용되는 기암괴석의 절경이 백사장 사이사이에서 자태를 뽐내고, 고깃배가 정박하는 포구는 푸근함을 준다. 포구가 있으면 방파제가 있는 법. 푸른 물결을 가로질러 약 100m의 방파제가 바다로 드리워져 있다. 밋밋한 방파제가 아니다. 끄트머리에 등대가 있다. 빨간 불을 반짝인다. 또 있다. 모래와 파도가 만들어 놓은 동해안의 전형적인 석호, 매호다. 갈대가 무성하다. 한번의 나들이로 이들을 몽땅 즐길 수 있다.
가장 너른 해안은 북쪽의 남애해수욕장. 폭이 100m, 길이가 2㎞에 달한다. 모래결이 부드럽고 물이 얕아 가족 바캉스에 좋다. 중간에 위치한 남애3리 해수욕장은 길이가 1.3㎞. 바로 옆에 남애항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남쪽의 남애1리 해수욕장은 길이 600m의 아담한 해변.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밤바다는 남애3리 해수욕장과 남애항 일원에서 즐긴다. 포구 가득 고깃배가 들어서 있고, 불을 밝힌 횟집촌 사이에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에 올라선다. 멀리 수평선이 훤하다. 월드컵 경기장 수십개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방파제 입구에서 왼쪽으로 돈다. 초소가 있는 돌출바위가 있고 그 아래로 기암들이 깔려 있다. 오렌지빛 조명을 비춰놓았다. 하얀 파도가 달려오다가 바위를 핥으며 힘을 잃는다. 파도의 수를 세며 한참 앉아 있는다. 지루하지 않다. 현남면사무소 (033)670-2605, 남애리어촌계 671-7596.
영덕의 해안도로(경북 영덕군)
해가 진 뒤의 이른(?) 밤이 아니라, 해가 뜨기 직전의 여명 나들이에 어울리는 곳이다. 영덕의 대표적인 항구는 강구항.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세상에 알려진 후, 경북 동해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행지가 된 곳이다. 새벽 여행은 강구항에서 축산항까지, 지금은 영덕 최고의 명소가 된 해안도로(일명 강축도로)를 따라 북상하면서 크고 작은 포구를 구경하는 것이다. 바닷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순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아직 어두운 강구항, 그러나 사람들의 손길은 이미 분주하다. 고깃배들이 줄을 서서 항구로 들어온다. 여름은 대게 금어기여서 영덕 앞바다의 대게를 직접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대신 다른 구경거리가 넘친다. 펄펄 뛰는 오징어를 비롯해 마라도나의 다리만큼 크고 두꺼운 한치, 정말 등이 푸른 고등어와 꽁치,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진귀한 해산물들. 눈으로만 구경할 것이 아니라 아침 찬거리를 장만하는 것도 좋다. 산 오징어 등 동해안의 명물은 도시사람들 앞에서는 슬며시 값이 오른다. 고등어와 꽁치 등은 예외. 도시에서도 흔한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싼값에 몇마리 아이스박스에 넣는다. 도시의 시장에 있는 것과 맛이 완전히 다르다. 전혀 다른 생선이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강구항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해안도로에 오른다. 해안도로는 바다와 거의 붙어서 달린다. 오른쪽으로 까만 바다가 펼쳐지고, 차창 안으로 들어올 듯 파도가 친다. 작은 포구들을 만난다. 새벽불을 밝히고 출어를 준비하고 있는 배의 무리를 만나면 행운. 까만 바다를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배들은 마치 산속에 들어있는 작은 마을 같다. 파도에 흔들거리는 것만 다를 뿐. 길의 중간 지점에 해맞이 공원이 있다. 높은 바닷가 절벽 위이다. 등대도 만들어 놓았고, 산책길도 조성했다. 간이 찻집이 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여명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렌지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구경한다. 다시 뜨거운 여름 바다가 시작된다.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396.
함덕(제주 북제주군)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여름밤의 제주는 달무리같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만든 해안 일주도로의 가로등과 도시의 불빛이 타원형의 달을 만들고 그 달을 빙 둘러 고깃배들이 불빛이 반짝인다. 고깃배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서귀포 앞바다 일대와 북제주군 함덕리 부근. 밤이 깊어 육지가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바다는 더욱 밝아지는 곳이다.
함덕은 함덕해수욕장이라는 걸출한 바닷가로 잘 알려진 곳. 길이 1㎞에 가까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푸른 물빛이 환상적이다. 특히 제주시에서 가까워 여름이면 시내 호텔에서 묶는 피서객들이 대거 몰리는 곳이다.
밤바다를 감상하는 제1포인트는 해수욕장 전면. 모래사장에 앉아 그냥 수평선을 응시해도 되지만 바다로 조금 나아간다. 해수욕장 앞에 작은 바위섬이 있다. 그 곳으로 연결되는 다리와 길이 나 있다. 섬에 서서 앞을 보면 한일자(一)로 드리워진 고깃배의 하얀 불방망이가, 뒤를 돌아보면 횟집촌의 네온이 반짝인다. 무척 대조적이다.
제2포인트는 해안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산책을 하는 것이다. 모래밭이 끝나면 방파제, 방파제가 끝나는 곳에 작은 포구가 있다. 바다를 향해 배를 묶을 수 있는 선착장이 드리워져 있다. 선착장 끝에 흰색 가로등이 켜져 있다. 가로등 아래는 바로 바다. 수심이 얕고 불빛을 받은 바다는 바닥까지 훤하게 보인다. 묘한 색이다. 파도에 따라 비취빛에서 연두빛으로 색깔을 수시로 바꾼다. 앞을 보면 반도처럼 비죽 나온 육지에 민가가 있다. 독특한 풍광이 펼쳐진다. 마을 뒤로 고깃배의 집어등이 환하게 빛난다. 구름까지도 그 빛을 받아 반짝인다. 검은 실루엣의 마을, 그리고 밝은 하늘과 바다. 마치 낮과 밤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북제주군청 홈페이지 bukjeju.go.kr.
도동(경북 울릉군)
도동은 울릉도의 관문. 한때 울릉도에서 가장 큰 어항이었으나 이제 바로 옆의 저동에 해양전진기지를 내주고 이제는 육지와 섬을 잇는 대문의 역할을 한다. 도동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오징어배의 어화(漁火 또는 漁花)를 구경할 수 있는 곳. 마을 자체가 거친 바위 절벽의 틈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 절벽 위에 올라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고개를 쳐들면 까마득한 절벽. 어떻게 올라가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절벽 위의 전망대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라 왼쪽을 본다. 발 아래로 도동의 야경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오징어배의 어화가 물에 떠 있다. 무척 밝다. 맞은 편 절벽이 밝은 불빛 덕분에 야성적 윤곽을 드러낸다. 웬만한 각오를 하기 전에는 감행하기 힘든 울릉도행. 그러나 평생 기억에 남을 가장 아름다운 밤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울릉군 문화관광과 (054)790-6393.
임포(전남 여수시)
여수시 앞바다에 떠있는 돌산도.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큰 섬이다. 이제는 돌산대교라는 아름다운 다리로 이어져 있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임포는 돌산도의 남쪽 끝마을이다. 어촌으로 치자면 '깡촌'인 이 마을은 이제 더 이상 촌이 아니다. 남해 보리암, 양양 홍련암, 강화 보문사 등과 더불어 남한의 4대 기도도량인 향일암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불심이 깊은 불자들만 삼삼오오 찾았으나 밀레니엄이 바뀌는 것을 계기로 전국에서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왔다. 향일암은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인 데다가 영험한 기도도량이다. 참배객을 통제하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목이 쉴 정도였다. 이후 임포마을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횟집과 숙박시설 등등. 그래서 적막했던 밤 풍경이 밝아졌다. 임포마을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향일암. 해가 지기 직전에 오른다. 일몰을 보고 어둠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마을에 하나 둘씩 불이 켜지고 고기잡이배가 불을 밝히고 포구로 돌아온다. 아직 파란 기운이 남아있는 바닷물의 색깔과 불빛이 어울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앙증맞고 푸근한 야경이 펼쳐진다. 여수시청 문화관광과 (061)690-2225.
정동진(강원 강릉시)
화려한 바다의 밤을 원한다면 정동진으로 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10년 전 정동진은 파도의 포말을 맞는 작은 역사가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이후 일출의 명소로 급부상한 정동진은 지금 동해안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 됐다. 좀 과장하면 거의 라스베이거스 수준이다.
바위 절벽에 세워진 호화로운 숙박시설 썬크루즈. 범선의 모습을 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낮이면 다소 흉물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밤이 되면 주변 풍광을 압도한다. 야경을 잘 보려면 정동진 바닷가 보다는 조각공원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수레바퀴처럼 생긴 모래시계 등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빛을 낸다. 과거 이 곳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세월의 흐름을 느낄 것이다. 강릉시 종합관광안내소 (033)640-4414.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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