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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어린이공화국" 창립자 실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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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어린이공화국" 창립자 실바 신부

입력
200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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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벤포스타를 세웠는가."벤포스타를 세운 것은 내가 아니라 어린이들이다. 14세 때 성소를 받고 신부가 되기 위해 이듬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사제 서품을 받으면 베네수엘라로 선교를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제서품 받기 1년전 쯤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알게 됐다. 당시는 프랑코 독재체제라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어린이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다. 가족에게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런 어린이 15명을 알게 되어 세상을 바꾸도록 이들에게 공동체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상이 너무 싫다며 왜 우리가 또다른 세상을 만들지 못하느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제서품을 받고 와서 보니 이미 어린이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만들어놓았다. 나는 지도자였을 뿐 벤포스타를 만든 것은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당시 14, 15살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나 같은 할아버지가 됐다."

―독재체제라 어려움도 많았을텐데.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신부였다면 당장 끌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지도하니까 정부에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어린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인공인데. 세 살 때 가톨릭적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본 것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아버지는 판사인 외삼촌 덕분에 곧 풀려나셨지만 집안 분위기 때문에도 독재에 민감했다. 건축가였던 아버지는 결국 1947년에 뇌일혈로 사망하셨다. 벤포스타가 생길 당시 가톨릭 교회와 (독재)정부는 협력관계에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정부산하기관이 아니면 어린이 청소년 기구를 만드는 것도 금지돼 있었다. 나는 신부로서 이런 가톨릭의 입장을 동의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신부라는 것 덕분에 민주적인 어린이 나라를 세우는 것이 허용됐다."

―왜 어린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다 자란 어른의 생각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렸을 때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결정된다."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자유로운 나라를 꿈꾼다. 피를 흘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 남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

―어떻게 가르치나.

"어려서부터 정치적인 문제에 눈뜨도록 가르쳐준다. 세상에는 전쟁이 있고 고통이 있고 굶주린 사람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이 같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

―아이들은 부모와 자라야 하는 것 아닌가.

"가정이 완벽하다면 이상적이지만 부모 가운데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부모와 자녀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보호하고 보호받는 일방적인 관계라서 서로 참여하여 대등한 책임을 배우기 힘들다.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형제가 최소한 3명 이상이어야 한다. 혼자 자라면 변덕스럽고 이기적이 된다. 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는 것보다는 다른 어린이들과 책임과 자유에 대해서 체험하면서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벤포스타는 친부모는 없지만 전체가 거대한 가족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가정에서는 아이를 올바로 키울 수 없는가.

"가정마다 벤포스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똑바로 가르쳐줘야 한다. 팔이 잘리고 죽어가고, 쓰레기통 옆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어린이들이 이웃에 있다는 것을 일러줘야 한다. 초·중·고 대학과정에서 이 세상을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도록 아이들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부모세대가 만들지 못한 세상을 아이들은 만들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음악에 소질 있으면 음악학교로, 미술에 소질 있으면 미술학교로, 아이의 재능에 따라서 가르치는 것은 달라야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똑같아야 한다."

―특히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충고하고 싶은게 있다면.

"이곳에 와서 보니 어린이들이 무척 밝아서 좋았다. 출산률이 낮은 것이 걱정된다. 아이들을 과보호해서 약하게 키우지 말고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우리집만 아니라 이 집 저 집 이 동네가 다 가족이다. 남한 어린이에게는 북한 어린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 북한 어린이들이 병들고 배고파 죽어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이들을 형제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남북한을 하나로 느끼면 나아가 일본 중국 필리핀 전세계로 이런 형제애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다는데 벤포스타 출신들이 지원하지 않나.

"벤포스타를 거쳐간 사람들이 4만명 정도 된다. 이들 가운데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광대학교를 운영하는 이도 있고 스페인의 사회당 정치가도 있다. 이들이 벤포스타에 있다면 벤포스타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 있는데 지원을 요구할 수는 없다. 2006년이 창립 50주년이라 모임을 갖고 후원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는 들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벤포스타 어린이 나라

1956년 실바 신부가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아 갈 곳 없는 거리의 소년 15명과 함께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주 오렌세시 교외의 포도원에 세웠다. 이곳에는 제 앞가림을 할 줄 알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며(대개 10세 전후) 나가는 나이는 제한이 없다.

시장을 비롯한 각부 장관등 독자적인 정부조직을 갖고 있으며 코로나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쓴다. 현재 시장은 모로코 출신의 문도(15).

벤포스타에서는 공부를 하면 어린이들에게 돈을 지급하고 아이들은 이 돈을 받아서 생활을 한다. 공부를 하지 않거나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벤포스타를 움직이기 위한 주 수입원은 도자기 주물 같은 공방과 외부에서도 유학오는 벤포스타 방송대학,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어린이서커스단이다. 이 서커스단은 세계 순회공연을 여러 차례 했으며 한국에도 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로부터는 학교과정이 공인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사 급료를 지원받는 것이 전부이다.

70년대 중반에는 2,000명 정도까지 인구가 늘어났지만 지금은 150명 정도가 스페인 벤포스타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신 외국 벤포스타가 커졌다. 콜롬비아에 6개 어린이나라가 있어 5,000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 각각 1,000명 정도가, 니카라과에 100명이 생활하고 있다. 국내에는 70년대 전성기때를 독일인이 취재한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보리 발행)와 스페인 통역가인 이서영씨가 최근 2년간 방문기록을 쓴 '어린이 나라 벤포스타를 찾아서'(한마당 발행)가 출간돼 있다.

● 벤포스타 최고령 자이네 바로스

실바 신부의 방한에 동행한 벤포스타 국민 자이네 바로스 디아스(26·사진)는 콜롬비아 출신.

1989년 실바 신부가 벤포스타 지부를 세우기 위해 고이히라 마을을 찾았을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성당에서 복사(신부의 미사집전을 돕는 어린이)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실바 신부님이 오셔서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싶으니 포도주와 성체를 챙겨달라'고 했다. 주위에 누군가 물어보았더니 친구가 어린이 나라를 이야기해줬다. 이후 신부님을 모시고 인디언 마을도 안내하고 여러 가지를 도와드리면서 벤포스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벤포스타 고유의 성인식인 '대모험'을 치르기 위해 스페인의 로카스 수도원에 다녀갔고 91년에 친구와 함께 스페인 벤포스타에 정식 입소했다. 당시 14세.

4남1녀 중 차남. 언론인이고 사업가인 부모님은 보내는 것을 반대했으나 "울면서 가게 해달라"고 졸라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물론 그도 "가족 생각에 울먹인 적도 많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살아간다'는 벤포스타의 정신이 좋아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벤포스타 공화국내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어 방한중 실바신부의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그는 "중남미는 물과 공공서비스는 부족하지만 음식이나 자연환경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다. 벤포스타를 어린이들이 찾는 것은 먹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정신을 배우고 싶어서"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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