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상반기의 한국 문학은 지나간 문학에 관한 '애도'의 주간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문구 조병화 임영조 김강태 등의 문인들이 세상을 떠났고, 채영주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 이 추모의 시간을 통해 한국 문학은 자신의 궤적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추모와 애도는 근본적으로 문학 자신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삶 혹은 시간에 관한 '애도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문학은 근대적 의미의 문학 장르 자체에 관한 '추모의 염'을 문학적 주제의 하나로 추구해왔다.물론 그 애도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것의 출현에 대한 문화적 요구는 팽배하다. 가령 문학 시장의 경쟁력 있는 문학상품으로 떠오른 '인터넷 소설'의 부상을 보자. 온라인 공간을 통해 10대들에게 유포되던 소설이 오프라인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는 상황은 '문학 외적'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다. 그런 독서 상품을 '본격적' 의미의 '문학 작품'으로 명명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평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 문법의 바깥에서, 이모티콘으로 대표되는 미성년의 집단 '방언'들이 자기 세대의 언어로 소통된다는 것은 문화적 사건이다.
다양한 문학의 출현 가능성은 새로운 문학 계간지들의 등장과 연관될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문학수첩'과 '파라 21'등의 종합 문예지들이 창간됨으로써 문학계간지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상당한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 새로운 문학 계간지들이 질적 차원에서의 한국 문학의 다원화에 기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한 지면의 확대를 넘어서, 문학 계간지들이 새로운 기획력을 보여줄 때 한국 문학의 미학적 다원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 내외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의 중심을 잡아주는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이 상반기에는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이청준 정찬 최윤 송영 한수산 박범신 현길언 송기원 등의 작품으로부터, 구효서 이순원 정영문 등의 작품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시의 경우는 황동규 김광규 임영조 이성복 장옥관으로부터 이윤학에 이르는 작품들이 그렇다. 특히 10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는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의 경우 속도전의 논리로 움직이는 한국 문학의 상황에서 10년 동안 침잠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시집 한 권의 구성적 완성도와 미학적 밀도를 통해 보여주는 예외적 사례이다. 생과 사, 성(性)과 식(食)이라는 실존적 주제를 내밀한 깊이를 가진 비등점의 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두드러진 여성 작가들의 활동도 여전했다. 신경숙 배수아 전경린 이현수 권지예 등의 신작 등이 그 예이다. 신경숙의 '종소리'는 정교한 문체적 기량과 상처받은 존재들에 대한 위로와 진혼의 성숙한 감각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집이다. 생의 불모성을 풍부한 울림을 가진 상징적 언어들로 포용하는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빈곤'의 문제를 단순히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타자들의 욕망의 정치학이라는 차원에서 다룬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기만의 구조에 대한 작가의 차갑고도 예리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반에 출생한 작가들의 활동은 이들이 새로운 문학 세대의 주력으로 떠오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김연수 김경욱 박현욱 김종은 박민규 등의 소설들은 이들 세대의 고유한 문화적 경험에 바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이들 세대의 문학적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낡은 문학은 숨을 거두지 않았고, 새로운 문학은 아직 온전히 태어나지 못했다. 한국 문학은 이제 '애도'의 시간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새롭고 다양한 문학의 가능성, 그 최대치를 밀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지나간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진정한 '애도'이며 '진혼'이다.
/평론가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