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관중이 감탄할 만한 어려운 플레이는 영리한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프로에 입문한 선수라면 운동선수의 기본인 체력뿐만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갖추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그 직업에 오래 남거나 큰 돈을 버는 선수들은 영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선수의 지적인 능력은 경기장 안팎에서 엿볼 수 있다. 영리한 선수는 경기장 안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플레이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하고 경기장 밖에서 하는 말과 행동도 남다르다. 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하는 말은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는데 슈퍼스타는 말솜씨부터 보통선수와 다르다.
한국인 중 운동선수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돈을 번 남자 선수인 박찬호도 멋진 말솜씨를 보여준다. 1,000만달러 선수가 되기 전인 2000년에 야구대표팀 및 리틀야구 팀의 야구클리닉 목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던 박찬호는 CCTV를 비롯한 수십 명의 중국 스포츠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중국기자와 질의응답을 시작하기 전에 서툰 중국말로 박찬호가 인사말을 꺼내는 순간 기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이 오가다 한 기자가 "이 행사가 일과성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행사가 될 것인지"를 물었다. 꽤 까다로운 이 질문에 박찬호는 "친구집 파티에 갔을 때 주인이 호의를 베풀면 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유쾌하지 못할 경우는 다시는 가기 싫어지더라. 중국에 자주 오고 말고는 이 곳 사람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일 만나게 될 중국 어린이 야구 선수들이 나를 원한다면 자주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최고 선수의 재치와 지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 훌륭한 답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자선수 중에서는 현재 박세리가 최고갑부로 꼽히는데 며칠 전 한 신문에 보도된 미셀 위의 인터뷰를 보고 조만간에 자리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미셸 위가 "캐디와 호흡이 잘 맞느냐"는 약간은 짓궂은 질문에 "캐디와 나는 서로 다른 혹성에서 온 사람처럼 항상 다투지만 아빠를 해고할 생각은 없다"는 답변으로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기사였다.
또 프로진출 의향을 묻는 돈과 관련된 질문에는 "프로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인데 나는 지금과 같은 실업자 신세가 더 좋다"고 했다고 전한다. 13세짜리가 한 답변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재치가 그런 예감을 들게 했다.
말솜씨와 플레이는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 상관이 있다. 경기 중에 부닥치는 어려운 장면은 교과서에 없는 플레이를 요구하게 되고 창의력이 없는 선수는 평범하게 넘길 수밖에 없다. 프로구단이나 스폰서는 체력이상의 지적인 능력을 가진 선수에게 거액을 제시하는데 말솜씨는 그런 능력을 가늠하는 수단 중의 하나다.
/정희윤·(주)케이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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